웃음 vs 눈물
<미스터 빈>의 한 에피소드에는 빈의 여자친구가 등장한다. 크리스마스 무렵, 보석상에서 맘에 드는 반지를 가리키던 그녀에게, 빈은 반지 홍보 포스터를 선물한다. 화가 나서 가버린 여자의 뒤통수에 대고 빈은 중얼거린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이로써 빈은 유일하게 교감하던 여자친구를 잃고 다시 외톨이가 된다. 이 에피소드는 우습지만 슬프다. 미스터 빈이, 로완 앳킨슨이 슬퍼 보이는 순간은 이때만이 아니다. 자신을 백치로 정형화한 희극 배우들의 연기는 이따금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것은 에드거 모랭의 표현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는 제물과 속죄양”이길 자처한 그들에 대한 경애과 연민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웃게 하는 그 연기가 배우 본인의 삶을 반영한 것이라면, 그나마 머금고 있던 웃음기마저 거둬야 할 것 같아, 몹시 심란해지는 것이다.
로완 앳킨슨은 미스터 빈의 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홉살 시절의 자신이라고 답하곤 한다. 실제로 로완 앳킨슨은 외계인 같은 외모와 소심하고 우울한 성격 때문에 괴롭힘을 많이 당하던 아이였다. 약간 말을 더듬었던 그는 “똑똑하지만 괴상한 아이”로 또래들과 잘 섞이지 못했다. 일찍부터 연극무대에 서곤 했던 그는 열두살 이후로는 무대 위나 카메라 앞이 아니면, 절대 남을 웃기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대학에 진학한 뒤로도 정기적인 연극 모임 이 외에는 방에 틀어박혀 기계를 고치거나 조립하는 것으로 소일했다. 또래들의 따돌림 속에서, 그리고 닫힌 방문 안에서 로완 앳킨슨은 자신의 우주를 짓고 홀로 군림했다. “내 안에는 미스터 빈이 있다. 나도 사회적으로 부적응자이고, 이기적이며 무례하다. 알고 보면 빈처럼 순진하고 착하기도 하지만.”
또 하나 웃어 넘기기 힘든 대목은, 로완 앳킨슨이 “지병”이라고까지 표현한 완벽주의다. 그는 일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고 스트레스받는 스타일이라, 과정으로서의 일을 ‘절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특히 출연작 대부분이 ‘원맨쇼’에 가까운 캐릭터 코미디였던 관계로 그는 늘 고민하고 걱정하다 신경성 위장병까지 앓는 신세가 됐다. 자신의 작품을 홀가분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과정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모두 잊은 뒤인 10여년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스타 vs 운둔다
영국 사람들이 사랑한 로완 앳킨슨의 분신은 미스터 빈만이 아니다. 80년대 중반에 그들은 영국 역사에 대한 과감하고도 엉뚱한 재해석을 담은 풍자코미디 <블랙 애더>를 사랑했고, 다섯 번째 시즌을 끝으로 종영하자, 제작사에 격렬한 항의 편지를 보내는 등 집단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로완 앳킨슨이 때때로 코미디가 아닌 정극 연기를 선보인데다, 영국 특유의 문화와 어법을 부각시킨 이 작품은 영국 밖에선 제대로 알려지거나 환영받지 못한, ‘영국인의 컬트’로 남았다.
로완 앳킨슨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뭐니뭐니해도 <미스터 빈>을 통해서일 것이다. 89년 방영을 시작한 <미스터 빈>은 <BBC> 방송사상 최고인 60%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많게는 1800만명의 시청자를 확보한 뒤, 700만개의 비디오까지 팔아치웠다. 이 별난 무성 슬랩스틱코미디는 곧 245개국과 50개의 항공사에 팔려나가는, 영국 최고의 수출 상품이 됐다. <미스터 빈>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 주례 서는 신부로 카메오 출연한 로완 앳킨슨을 알아보는 이들도 많아졌다. 로완 앳킨슨의 본격 영화 진출작이자, 첫 주연작인 <빈>이 전세계적으로 2억5천만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 역시 <미스터 빈>의 인기를 등에 업은 결과였다.
로완 앳킨슨은 글로벌 스타가 됐지만, 그 성공이 할리우드의 덕을 본 것도 아니며, 할리우드를 지향했기 때문도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할리우드적인 것이 유니버설한 것이라는 통념을 가볍게 뒤집었기 때문이다. <스쿠비 두>처럼 다분히 미국적인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예도 있긴 했지만, 로완 앳킨슨은 연기뿐 아니라 기획과 각본에도 관여할 여지가 있는 영국에서의 작업, 그 자유를 포기할 의향이 전혀 없다고 밝힌다. 이런 결정에는 할리우드에 진출한 영국 배우들이 대개 집사나 사이코 역할만을 할당받는 데 대한 불만도 일조했을 터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이면서도, 로완 앳킨슨은 자신에 대한 세상의 관심에 응대하지 않는다. 인터뷰를 기피하기로 유명한 로완 앳킨슨과 대면한 몇몇 언론들은 “조용하다”, “어둡다”, “달변이다”, “지적이다”, “현학적이다”, “무례하다”라는 인상 단평을 풀어놓았다. 그리고 언젠간 로완 앳킨슨 본인이 자기에겐 공인으로서의 자의식이 없음을 시인했다. “사람들은 내가 평상시에도 빈처럼 굴기를 기대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 일하지 않을 때는 스위치를 꺼두고 싶다.” 일에 대한 과도한 스트레스를 고요하고 은밀한 사생활로 상쇄하고 싶어하는 로완 앳킨슨은 분장사 출신인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가장이며, 예닐곱대의 차를 소유한 자동차광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 첫눈에 반할 연기를 시키려면, “얼마 전에 새로 산 그 차가 눈앞에 있다고 상상하라”는 주문을 던지면 효과 만점이라는 게, 그 아내의 전언이다.
사랑 vs 경멸
제 아무리 특급스타라 해도, 만장일치의 사랑을 받진 못한다. 로완 앳킨슨의 경우는 언제나 찬반이 동수로 나뉘곤 한다. 열렬히 사랑하거나, 아님 경멸하거나. <블랙 애더> 등 로완 앳킨슨의 초기작에 열광한 쪽은 평단이었다. 그러나 지성을 걷어낸 <미스터 빈> 이후의 로완 앳킨슨에 열광하는 쪽은 오직 관객이다(영국 아카데미상인 BAFTA는 <미스터 빈> <빈>을 홀대해 팬들의 원성을 산 바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 계급 사람들이다. 엄숙하고 고상한 사람들은 로완 앳킨슨을 드러내놓고 좋아하는 법이 없다. (그들 기준에서) 천박하고 무식하고 철없는 관객과 함께 로완 앳킨슨의 영화를 즐긴다는 사실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빈의 캐릭터를 변주한 <빈> <쟈니 잉글리쉬>에 대한 평단과 대중의 엇갈린 반응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로완 앳킨슨은 이에 대해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을 것이고, 반면 상복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코미디에서도 깊이를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거슬릴 게 뻔했다. 지적인 함의나 아이러니, 서브텍스트 없이, 겉으로 보이는 게 다니까.”
로완 앳킨슨은 또 하나의 극장판 <빈>을 만들게 되면, 자크 타티 식의 시각적 유머를 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대처와 레이건의 시대 이후론 정치풍자가 드물었다는 아쉬움으로, 정치풍자극을 만들어 오사마 빈 라덴을 연기하고픈 ‘소망’도 있다고 한다. 로완 앳킨슨이 누굴 연기하든, 그 캐릭터가 잘났든 못났든, 사랑스럽든 혐오스럽든, 분명한 건, 그가 우릴 웃게 만들 거라는 사실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박은영 cinepark@hani.co.kr
로완 앳킨슨의 다른 얼굴, 다른 작품들‥3
<씬 블루 라인>의 고지식한 경찰(1995)
경찰서가 배경인 시추에이션코미디 <씬 블루 라인>의 로완 앳킨슨은 가장 ‘정상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가 연기한 레이몬드 파울러 경위는 사내 연애를 거쳐 동료 경찰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으며, 썩 마땅치 않지만 상관이나 후배들과 함께하는 직장생활도 무난한 편이다. 로완 앳킨슨의 캐릭터 중에선 사회화가 많이 된 인물. 로완 앳킨슨의 자평에 따르면, “가장 3차원적인 캐릭터”이다.
그러나 비교적 정상적인 캐릭터인 파울러 중위마저도 여전히 괴이한 구석이 있다. 그는 여왕의 생일 선물을 준비하고, 지루한 훈계를 즐기는, 시대에 뒤처진 인물이다. 역할모델도 너무나 고전적인 ‘셜록 홈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파울러 중위의 특기(이자 패착)는 헛다리 짚기. 청소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현장 진압에 나서 보면, 범인들은 중년의 아저씨들이다. 인권단체의 간부를 외계인으로 오인하는가 하면, 창 밖 실루엣만으로 가정 폭행으로 확신, 급습한 현장에서 상관의 변태 행각을 목격하기도 한다. “난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구나” 하고 탄식하는 로완 앳킨슨의 비현실적인 얼굴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고단함이 배어나는, 그래서 낯선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