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에 있었던 저 불의의 ‘덜 마무리된’ 음원 유출 사건을 생각해보면 이번 대망의 라디오헤드 새 앨범의 제목 ‘Hail To The Thief’, 즉 ‘도둑에게 경배를’이란 타이틀은, 조지 부시의 석연찮은 미국 대선 승리에 대한 심기 불편한 일갈이었던 원래 의미의 틀을 멋대로 박차고 나온 그들만의 짓궂은 농담이거나 그도 아니면 차라리 놀라운 예언이라고 해야 할 판이었다. 이미 모든 음악이 파일화되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는(듯한) 인터넷 세상에서 이런 일이 어찌 청천벽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마는 록계의 날카롭지만 어쨌든 고집불통 백면서생들인 라디오헤드로선 금전적 문제만큼이나 자신들의 컨트롤 영역을 벗어난(혹은 침범당한) 당혹스러움을 우선 맞닥뜨리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한데 그 사건으로 그들이 배운 교훈은 무엇일까. 혹은, 그런 게 있을까. 그 해프닝이 이들의 판매고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는지는 사실 확신하기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덜 만들어진 그 곡들은 대부분의 베타 버전들이 그렇듯 실제적인 판매고로 이어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들과 달리 정작 앨범의 실질적인 홍보를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모두를 경탄하게 했지만 아연하게도 만들었던 지난번 와 <Amnesiac>라는 엄청 심각해 보였던 쌍둥이 앨범 이후에 사람들이 가졌을 법한 일말의 불안감을 한발 앞서 해소시키는 안정제 역할까지 해준 셈이 되었다. 이 앨범은 (컴퓨터와 콘솔 보드를 떠나) 다시 기타 음악으로 돌아가리라는 당시 그들의 모호한 말이 실은 진심의 약속으로 지켜졌음은 물론, 그에 더해 이들의 지금까지의 최고작이자 90년대 록을 규정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앨범 <OK Computer>에 가장 근접한- 아마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라디오헤드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었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외의 스트레이트한 태도를 보이는 음반이다. 무엇보다 곡들이 살갑다.
그리하여 이 <Hail To The Thief>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이 앨범의 미덕일 순 있을지언정 의의는 아니다. 그것은 이 앨범이 <OK Computer>에 근접한 만큼이나 그것을 이미 지나온- 당연한 일이지만- 내용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누구나 매혹될 만한 첫 트랙 같은 곡은 확실히 ‘우리가 알고 있는’ 라디오헤드의 컴백을 알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지만, 트랙들이 진행될수록 그것은 우리가 ‘안다고 믿고 싶어하는’ 라디오헤드임을 실감하게 된다. 예컨대 <Kid A>와 <Amnesiac>이 단순히 자의식 팽창 중인 젊은 밴드의 호기로운 한때의 기벽만은 아니었음이 부분 혹은 전면적으로 <Sit Down Stand Up> <The Gloaming> <Myxomatosis>(이 곡은 뭐 거의 70년대 EG 이블의 프로그레시브 트랙 같다) 등에서 완전히 체화(體化)된 모양새를 목격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Hail To The Thief>가 <OK Computer>와 떨어져 있는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참에 좀더 넘겨짚자면, 그것을 통해 이들의 앞으로의 태도 또한 가늠해 봄직하다. 아마도 이들은 이대로 되돌아올 생각이 없을 것이다.
즉 록으로의 컴백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록이라는 기존의 방법론에 가장 심한 회의를 품은 작품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라디오헤드의 이번 앨범에 대해 우리가 반가워하는 만큼이나 실은 두려워해야 하는 점인지도 모른다. 혹은 진저리를 쳐야하는 점인지도?(EMI 발매)성문영/ 팝음악애호가 montypyth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