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강아지가 무심코 누고 간 똥이었다. 자기가 누군지 깨닫기도 전에 멸시와 모욕에 익숙해진 존재였다. 누추하고 누추한 것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여겨지는 ‘강아지 똥’을 통해 깨달음을 주는 동화 <강아지 똥>.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영상으로 빚어낸 애니메이션 <강아지 똥>이 오는 6월20일 오후 6시30분 EBS 공사 개국 3주년 기념 특집으로 방영된다는 소식이다.
1969년 발표된 권정생의 <강아지 똥>은 이미 잘 알려진 단편.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강아지 똥’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아간다는 짧은 이야기를 30분의 영상으로 빚어낸 것은 스톱모션 전문 제작사 아이타스카 스튜디오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은데다가 서사구조보다 주인공의 독백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짧지 않은 영상으로 그려내기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제작진은 긴 시간의 공백을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원작에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것으로 완벽하게 채워넣었다.
캐릭터 원안은 정승각이 동화책에 그린 삽화에서 가져왔지만, 그렇다고 애니메이션의 독창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뜻밖인 것은 사실적인 묘사다. 보통 클레이애니메이션하면 코믹하고 단순화된 캐릭터를 떠올리기 십상인데 배경부터 등장인물까지 사실적이기 그지없다. 살을 에는 바람이 부는 시골 풍경, 스산한 담벼락, 농부의 걸음걸이, 마차를 끄는 소, 닭, 병아리, 민들레… 모두 몇십년 전 시골에 그대로 있었을 법한 모습이다. 모두 클레이와 폼라텍스로 공들여 만들어졌다.
주인공인 강아지 똥의 모습에는 약간의 변형이 있다. 눈과 입, 팔다리가 있고 말도 한다. 그러나 섬세한 움직임과 표정 때문일까. 사실적인 배경 속에서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제작진은 1초의 영상을 위해 15번의 연출을 해냈다고 한다. 움직임이 많은 새의 경우는 1초를 위해 30번을 연출했을 정도다.
전체적인 색상은 또 어떤가. 고민 끝에 ‘한국적인 인상파’로 가닥을 잡았다는 권오성 감독의 말대로, 하늘과 태양 등 자연의 색이 강렬하다. 전체에서 부분, 다시 강아지 똥의 시선으로 움직이는 앵글을 위해서 35mm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가 함께 동원됐다.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지만 특수효과도 제법 들어갔다.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도쿄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이탈리아 카툰스온더베이에서 최우수 작품상 등을 수상할 수 있었던 궁극의 이유는 역시 완성도에 있다. 원작의 감성을 살려낸 이루마의 음악과 정미숙, 유해무, 송도영 등의 목소리도 놓칠 수 없는 매력. 홈페이지(www.doggypoo.co.kr)에서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다.
사람을 장기 말처럼 다루는 부류가 판치는 세상이다. 모두들 더 화려하고 대단하게 보이고 싶어서 안달하는 세상이다. 인생을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스스로 ‘강아지 똥’의 마음으로, 길가의 작은 풀처럼 살아가고 있는 권정생 선생의 모습은 살아 있는 천사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흙덩이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이루어낼 소명이 있는 ‘쓸모’있는 인생들이다. 강아지 똥이 마침내 찾아낸 민들레 싹을 힘껏 껴안았듯, 자기 몸을 온전히 녹여 이루어낼 소명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김일림/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