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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밀러스 크로싱>
이다혜 2003-06-19

모자로 시작하여 모자로 끝나는 이야기. 코언 형제는 한 인터뷰 도중 자신들의 영화에서 ‘머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농담 반 진담 반 털어놓은 적이 있다. 아예 이발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만큼은 아니더라도, 1990년작 <밀러스 크로싱> 역시 오프닝에서부터 숲속을 데굴데굴 날아다니는 모자를 클로즈업하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을 준비를 한다. 주인공 톰은 “모자를 쫓아다니는 남자만큼 꼴불견인 존재도 없지”라며 내뱉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 모자만큼 의리(friendship)와 성격(character), 도리(ethics)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기표는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게다가 코언 형제의 영화 속에서 ‘그냥 놓여 있는’ 사물이 하나라도 있었던가. 그들의 그 질리도록 치밀하고 정교한 미장센!).

이 작은 기표는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미혹시킨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의 모자를 빼앗으며 그를 유혹한다. 사라진 가발은 라이벌로부터의 도전으로 여겨지며 갱스터들간의 싸움에 불을 붙이게 된다. 마치 마틴 스코시즈의 <순수의 시대>에서 강풍이 부는 가운데 필사적으로 모자를 움켜쥐고 거리를 걸어가는 신사들의 행렬처럼, 1920년대 미국 암흑가의 남자들은 넘어지고 얻어맞고 내쫓기는 한이 있더라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품위의 상징처럼 모자를 반듯하게 고쳐 쓰고, 상대방이 자신의 눈으로부터 속내를 읽어내지 못하게끔 약간 고개를 숙이며 성큼성큼 시대를 가로지른다. ‘한번 배신하면 계속 배신하는’ 더러운 연쇄사슬은 그렇게 우아한 방어의 기술을 통해 가까스로 적자생존의 법칙 속에서 그 생명력을 지속시킨다.

아마도 코언 형제의 초기 시절, 두 사람의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유머 감각과 무엇 하나 정석대로 움직이지 않는 내러티브의 정묘한 뒤틀림(인터뷰에 응한 가브리엘 번의 말을 빌리자면 ‘모든 것이 전도된’, 심지어 가브리엘 번은 대본만 읽었을 때 <밀러스 크로싱>이 코미디라고 생각했다고 한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여질 수 있었던 데에는 촬영감독 배리 소넨필드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할 것이다. <밀러스 크로싱> 이후 코언 형제와 쭉 호흡을 맞춰오고 있는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가 코언 형제에게 완벽하게 ‘일치’된다면 소넨필드가 찍은 초기작들은 촬영감독의 감수성이 좀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었다. 이번 DVD 제품에 수록된 소넨필드의 인터뷰 클립과 더불어 빼어나게 재생된 본편의 화면은 그런 의미에서 코언 형제 초기작의 비주얼 스타일을 아우르며 횡단할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점들을 제공한다.

비밀 몇 가지를 살짝 누설하자면, 소넨필드는 주로 21mm 이상의 와이드 앵글 렌즈를 사용하여 ‘웃기면서도 에너제틱한’ 느낌을 주는 편을 선호했지만 <밀러스 크로싱> 같은 경우는 감독들이 원하는 ‘점잖고 핸섬한 룩’을 위해 망원렌즈를 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숲속의 밀러스 크로싱 장면은 코닥이 아닌 후지필름으로 촬영되었다고 하는데…. 별로 대단한 비밀도 아닌 것 같다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긴다면 스페셜 피처난을 직접 확인하시길. 지금은 감독으로 잘 나가고 있지만 촬영감독으로서의 배리 소넨필드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충동이 마구 생겨나지 않는가!

PS. 파티장에서 앨버트 피니의 깜짝 여장 출연은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로빈 윌리엄스의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Miller’s Crossing, 1990년감독 조엘 코언출연 가브리엘 번, 존 터투로, 마샤 게이 하든, 앨버트 피니, 스티브 부세미장르 스릴러DVD 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1.85:1, NTSC오디오 돌비디지털 4.0 & 2.0출시사 이십세기 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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