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럭비공’ 스크린쿼터, 어디로 가나
2003-06-18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제) 문제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초여름 햇살처럼 뜨겁다. 초점은 스크린쿼터의 유지와 축소에 맞춰지고 있다. 연간 146일로 돼 있는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줄일 것이냐 말 것이냐는 것이다. 스크린쿼터는 한미투자협정(BIT)과 맞물려 논란을 증폭시킨다. 논란은 지난 1일 노무현 대통령이 스크린쿼터 문제를 관계장관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보라고 지시하면서 본격화했다. 묵은 과제를 지혜롭게 풀어보라는 주문이다.

그러나 관계부처는 스크린쿼터 양보를 놓고 입장이 서로 엇갈렸다. 문화관광부가 양보 반대입장을 밝히자 재정경제부는 불가피론을 내세웠다. 청와대는 스크린쿼터 축소 필요성을 제기해 일정 부분 재경부의 손을 들어준 형국이다.

직접 이해당사자인 영화인들은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축소는 말도 안된다며 펄쩍 뛰었다. 내한한 프랑스 영화인들까지 가세해 양보 후 겪을 후유증을 걱정했다. 주미대사는 스크린쿼터 축소의 피해가 BIT의 이익보다 훨씬 적다며 현실적 대처를 당부했다. 네티즌 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은 분분했다.

스크린쿼터제는 갈수록 뜨거운 감자가 돼가고 있다. 관점이 얽히고 설켜 쾌도난마의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이자 방향을 알 수 없는 럭비공이 바로 지금의 스크린쿼터문제라고 하겠다.

이달 초부터 20일 가까이 계속되며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있는 스크린쿼터 논란의 경과를 추적ㆍ정리해본다.

▲노무현 대통령(1일) =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서 방미ㆍ방일 경제수행단을 초청한 가운데 오찬간담회를 열어 스크린쿼터 문제를 직접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 투자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해달라는 참석자들의 건의를 받고 "걸림돌이 되고 있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해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주도로 문화부장관 등 관계장관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창동 문화부장관(5일) = 노 대통령의 지시 후 첫 공개반응은 이창동 문화부 장관에게서 나왔다. 이 장관은 이날 청와대의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 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BIT 체결을 위한 스크린쿼터 양보 불가입장을 기자들에게 밝혔다. 청와대가 스크린쿼터 문제 조정에 나선다는데 양보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형식이었다. 그는 "현재로선 바뀔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장관은 "BIT가 40억 달러의 투자효과를 가져온다는 일각의 주장 자체가 근거가 취약하고, WTO(세계무역기구) 협상에서도 스크린쿼터 같은 문화분야는 협상대상에서 제외하려고 하는데 BIT를 스크린쿼터와 연결시키는 것도 문제"라고도 했다.

▲권태신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12일) = 이 장관 발언 후 재경부의 공식반응은 일 주일 뒤에 나왔다. 권태신 국제업무정책관은 한 강연회에서 `스크린쿼터는 이기주의'란 용어까지 사용해가며 정면으로 맞받았다.

그는 "BIT를 스크린쿼터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는데 과연 어떤 것이 국익을 위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운을 뗀 뒤 "스크린쿼터는 양보해도 된다"고 결론내렸다. 한국 영화의 영화시장 비중이 40%를 넘어서고 있는데 아직도 이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은 이기주의라는 논리였다.

▲영화인 긴급기자회견(12일) = 권 정책관의 발언이 있던 날, 임권택 감독 등 영화인들은 프레스센터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스크린쿼터 축소논의 중단과 BIT체결 거부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 마디로 스크린쿼터는 하루도 못 줄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영화산업은 시장 크기에 따라 자본의 규모와 상업적 능력이 좌우되므로 한국영화가 미국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고 단언했다. 현행 의무상영일수가 깨지면 우리 영화가 존립할 근거를 박탈당하게 된다는 얘기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13일) =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이날 스크린쿼터 존치가 BIT에 걸림돌이 안된다는 내용의 한미투자협정 쟁점분석 보고서를 내 주목받았다. 미국의 BIT 협정모델에서는 상대 국가가 자국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스크린쿼터제를 두고 있는 것 자체를 문제삼고 있지 않아 BIT에서 스크린쿼터에 대한 쟁점은 이 제도를 미국인 소유 영화관에 적용하지 말라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청와대 초청 영화계와 경제학자 회의(13일) = 부처간 이견 차이가 두드러지자 청와대는 영화계 인사와 경제학자를 초청해 논의케 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참석자들은 이정우 정책실장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스크린쿼터제의 필요성과 영화를 포함한 영상문화산업의 중요성에 공감했으나 스크린쿼터 축소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14일) =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은 KBS TV의 `생방송 심야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영화계가 스크린쿼터를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부총리는 "우리가 1998년 BIT를 먼저 요청해 스크린쿼터를 포함, 실무합의까지 했는데 영화계를 설득하지 못해 스스로 뒤집었다"며 이같이 고충을 토로한 것. 그는 "그간 영화계도 많이 발전하고 시장점유율도 높아졌다"며 "한ㆍ미 재계가 한국 영화를 세계 무대에 진출시키고 정부도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한승주 주미대사(16일) = 한승주 주미 한국대사는 워싱턴에서 한국특파원들과 부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스크린쿼터 때문에 BIT가 안 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국익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크린쿼터 축소로 피해가 있더라도 BIT가 가져올 이익에 견주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17일) = 영화계와 경제계의 이견조정에 나섰던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내놓았다. BIT를 위해 스크린쿼터 축소는 필요하고, 바꿀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재경부의 손을 들어준 셈.

그러면서도 이 실장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 정말 안되는지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이라며 다소 신중한 자세도 보였다. 입장은 입장대로 밝히되 대화는 대화대로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이창동 문화부장관(17일) = 그러나 이창동 장관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장관은 국회 문화관광위에 출석해 스크린쿼터제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BIT 때문에 스크린쿼터가 폐지되거나 축소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부 입장이고 국민적 합의"라며 현행 유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 장관은 "스크린쿼터는 문화적 주권과 다양성, 영화산업의 미래, 경제적 논리로 봐서도 현재대로 유지되는 것이 옳다"며 "스크린쿼터와 BIT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프랑스 영화인들 기자회견(17일) = 서울에서 열리는 프랑스 영화제에 참석키 위해 내한한 프랑스 영화인들은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영화인의 스크린쿼터 수호운동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