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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만난 <신밧드:7대양의 전설>의 사람들

남동철 기자의 사적이고 시시콜콜한 해외 언론시사 체험기

일요일인 지난 6월8일, 런던의 유서 깊은 호텔 도체스터는 <신밧드: 7대양의 전설>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러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취재진들로 북적거렸다. 한국에서 온 취재진만 해도 영화주간지, 월간지, TV프로그램을 망라해 7명.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제작자인 제프리 카첸버그, 목소리 출연자인 조셉 파인즈, 브래드 피트 순으로 진행됐다. 여느 할리우드영화와 마찬가지로 기자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인터뷰할 대상이 한 사람씩 기자들이 모인 방으로 들어온다. 이날 인터뷰는 브래드 피트가 점심식사를 늦게 끝내는 바람에 1시간가량 지체됐다.

“오후 3시가 다 됐는데 아직도 밥먹고 있네.”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의 국내 배급을 맡은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가 투덜거렸다. 브래드 피트를 만나러 몇 시간씩 비행기 타고 온 수백명 기자들이 비슷한 마음이었으리라. 이날 일정은 방송매체 인터뷰를 한 다음에 인쇄매체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는데 한참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먼저 인터뷰를 끝낸 <출발 비디오여행>의 차미연 아나운서가 상기된 표정으로 로비로 내려온다. “인터뷰 어땠어요?” 이구동성으로 묻자 “좋았어요”라고 말문을 연 차미연 아나운서가 브래드 피트랑 사진을 찍었다고 자랑한다. “사진 찍게 해줘요?” 펜을 든 기자들이 일제히 ‘브래드 피트와 사진을’이라는 말에 잠시 숨을 멈췄다.

까짓거 1시간을 기다리면 어떻고 2시간을 기다리면 어떠하리. 상대가 브래드 피트라면 그 정도 수고로움은 각오하겠다는 의지가 여성 기자들의 두눈에 이글거리는 듯 보였다. 그건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순간 필자는 상대가 브래드 피트가 아니라 캐서린 제타 존스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탄식하긴 했지만(<신밧드: 7대양의 전설>의 목소리 출연자 중 한 사람인 캐서린 제타 존스는 뉴욕에서 인터뷰를 한다고 밝혔는데 배급사인 CJ는 캐서린 제타 존스 대신 브래드 피트를 택했다).

무료한 시간이 지나고 오후 5시가 넘었을 때, 이날 인터뷰의 첫 타자인 제프리 카첸버그가 들어왔다. 영리한 사업가이자 고집스런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그는 머릿속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101가지 방법’을 펼쳐놓고 사는 듯하다. 카첸버그는 예민한 문제에 대해 짧게, 그리고 더이상 묻지 못하게 답한다.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의 개봉일이 <니모를 찾아서> 때문에 밀렸고 2004년 12월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샤크 슬레이어>의 개봉일에 디즈니가 픽사의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을 개봉하기로 했다던데 디즈니의 이런 방해공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괜찮다.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디즈니에 대해 성토할 만도 한데 비즈니스맨다운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신밧드가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따온 캐릭터인데 최근 미국과 아랍의 관계가 영화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수십번 시사회를 했지만 아무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문제를 제기한 건 당신이 처음이다”라며 말문을 가로막는다. 취재진은 <슈렉2>에 대해서도 “더 크고 더 못생긴 놈이 온다”는 홍보성 멘트 이상을 캐내지 못했다.

“진정한 영웅은 엔터테인먼트 밖에”

곧이어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낯익은 조셉 파인즈는 들어오자마자 “여러분, 지치지 않았나요?”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신밧드: 7대양의 전설>에서 신밧드의 친구 프로테우스의 목소리를 연기한 조셉 파인즈는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을 거쳐 영국에서 연극배우로 명성을 쌓은 인물.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랠프 파인즈가 그의 형이고, 누나 마사 파인즈는 영화감독, 아버지는 사진작가다. 그는 배우가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가족이 다들 예술을 해서 창의성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문학,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따로 있다. 7살 때 학교에서 연극을 했는데 연극 제목이 <조셉>이었다. 내 이름과 같았는데 운이 좋아서 주인공 역을 맡게 됐다. 그 연극을 하면서 여기가 내가 있어야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질문이든 진지하고 심각하게 답하는 그는 극중 프로테우스가 약혼녀를 떠나보내는 장면에 대해서도 성심성의껏 자기 생각을 피력한다. “‘결코 여자를 떠나보내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는 사람의 선택을 통제할 수 없다. 난 ‘사랑하는 사람을 통제한다’는 발상을 싫어한다. 건강한 관계는 동등한 권리와 인격을 존중하는 데서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마음이 떠난 사람을 붙잡고 있는 건 더 힘든 일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기자들의 눈빛은 초롱초롱해진다. 역시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갈고 닦은 배우야, 하는 찬탄이 절로 우러난다.

조셉 파인즈 인터뷰의 절정은 “당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순간이었다. “영웅은 영화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몇주 전에 앙골라에 간 적이 있다. 한 어머니가 가족에게 먹일 물을 구하러 10마일을 걸어가서 물을 떠오는 걸 봤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를 보라. 거기엔 쓰러지고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서 모든 걸 용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한 영웅은 엔터테인먼트의 세계 밖에 있다.” 누군가 “아…(멋있어)” 하는 감탄사를 내뱉았다. 통역을 맡은 <씨네21>의 런던 통신원 이지연씨는 “역시 영국 배우들이 멋있죠”라고 말했고, 조셉 파인즈를 인터뷰해서 어디 쓸 데나 있겠어, 라고 여겼던 기자들도 “배우이기 전에 인간이 됐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곧 브래드 피트를 만난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어린 조카들이 볼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었다”

오후 7시가 넘었을 때, 마침내 브래드 피트가 들어왔다. 치렁치렁한 금발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채 모자를 눌러쓴 그는 지난주 내내 밤촬영을 했다면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할리우드의 특급스타지만 인디영화의 배우처럼 천진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첫 질문은 머리를 기른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찍고 있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역사물 <트로이>에서 아킬레스 역을 맡아서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질문을 하다 ‘롱(Long) 헤어(긴 머리)’를 ‘롱(Wrong) 헤어(잘못된 머리)’로 발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브래드 피트는 “괜찮다”며 통역자의 실수를 안심시키고는 혼잣말로 “롱(Wrong) 헤어, 롱, 롱. 난 잘못된 머리를 갖고 있어” 하며 즐거워한다.

어떤 질문이든 심각하고 진지하게 답하는 조셉 파인즈와 정반대로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한마디로 줄이고 엉뚱한 농담을 덧붙인다. 통역을 하고 있으면 한국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으면서 “Exactly”(정확히 통역했어요)라고 추임새를 넣는 식이다. 조셉 파인즈와 브래드 피트의 상반된 태도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프로테우스의 내면엔 깊은 갈등이 있다. 모험을 하고 거침없이 행동하고픈 욕망이 있는가 하면 규율과 명예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그건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다들 갖고 있는 갈등이다. 나는 프로테우스가 겪는 그런 갈등이 좋았다.”

조셉 파인즈는 연극의 정론에 입각한 해석을 내놓는 데 비해 브래드 피트는 그가 맡은 인물 신밧드에 대해 “감독, 제작자를 비롯 5천명이나 되는 애니메이터가 만든 것이다. 내가 맡은 일은 너무 조그마한 것이라 뭐라고 말할 게 없다”고 다소 싱겁게 대답한다. 그리고 “어린 조카들이 볼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일 뿐이다. 한 기자가 “당신은 모든 것을 이룬 ‘퍼펙트 액터’다. 아직 더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자 “퍼펙트 액터라고? 듣기 좋은 말이니 접수하지 뭐” 하며 한바탕 웃고는 “완전한 것은 없다. 할 일을 계속 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한다.

결국 농담 반 진담 반이 이어진 브래드 피트의 인터뷰는 15분 남짓하고 끝났다. 기자들은 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고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서도 브래드 피트는 환하게 웃음을 보였다. 오래 기다린 데 비해 턱없이 짧은 인터뷰지만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타라는 자의식이 없는 듯 장난기 넘치는 모습에 “잘생긴 데다 성격도 좋아”라는 칭찬이 쏟아져나왔다. 이튿날 런던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라탈 때까지 아무도 제프리 카첸버그나 조셉 파인즈를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브래드 피트가 편당 출연료를 1500만달러 이상 받는 이유일 것이다.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어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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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지난해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스피릿>과 마찬가지로 2D와 3D를 합성해 만든 작품이다. 인물은 펜으로 그리고 배경이나 괴물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었다. 수작업으로만 가능한 섬세한 표현을 놓치지 않으면서 3D의 사실적인 특수효과를 더한다는 계산이다. 제작자인 제프리 카첸버그는 ‘트래디지털’이라는 신조어로 만들어 이런 기법의 장점을 선전했지만 첫 시도였던 <스피릿>은 흥행성적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4년 전 제작에 들어간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글래디에이터>의 각본가 존 로건과 <개미>의 감독 팀 존슨을 끌어들여 완성한 작품이다. 카첸버그는 존 로건에게 “<아라비안나이트>의 신밧드를 주인공으로 삼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몬과 피티아스’ 이야기를 토대로 시나리오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신화에 따르면 피티아스는 운명의 여신들이 짜놓은 계략에 빠져 왕자를 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를 쓰게 된다. 친구 다몬은 피티아스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피티아스가 죽기 전에 부모님을 만나고 올 수 있도록 사흘간 말미를 달라고 요구한다. 피티아스 대신 다몬이 갇혀 있고, 피티아스가 돌아오지 않으면 다몬을 죽인다는 조건.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이 이야기를 신밧드와 친구 프로테우스의 것으로 변주한다. 신밧드가 혼돈의 여신 에리스의 모략으로 귀중한 보물인 ‘평화의 책’을 훔친 범인으로 몰리자 프로테우스가 신밧드를 대신해 감옥에 갇힌다. 신밧드가 평화의 책을 찾아오지 못하면 프로테우스가 대신 죽는 것이다. 신밧드는 처음엔 프로테우스가 어찌되건 도망칠 생각이었으나 프로테우스의 약혼녀 마리나가 동승하면서 평화의 책을 찾아나서는 모험에 뛰어든다.

이야기로 대충 짐작할 수 있듯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주인공의 이름이 신밧드라는 걸 제외하면 <아라비안나이트>와 아무 관련이 없다. 다른 캐릭터나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것이 대부분이며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가 아니라 지중해에 위치한 미지의 나라다. 바다 괴물, 사이렌 등과 싸우는 신밧드는 오디세이아를 연상시키는데 카첸버그는 “온갖 신화에서 흥미로운 건 무엇이든 끌어들였다”고 말한다. <신밧드: 7대양의 전설>은 목소리 출연진이 화려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브래드 피트가 신밧드, 조셉 파인즈가 프로테우스, 캐서린 제타 존스가 마리나, 미셸 파이퍼가 에리스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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