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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끝으로 폐간되는 영화전문지 <키노>, 그 폐간의 속사정
2003-06-17

고급-비주류 문화의 설 자리는 없는가?

영화전문지 월간 <키노>가 7월호를 끝으로 폐간된다. 1995년에 창간되어 통권 99호째로 문을 닫게 된 <키노>는 진지한 작가주의의 보루로서 지난 8년 동안 열혈독자그룹의 지지를 받는 대표적인 영화잡지였다. 이같은 전위적인 영향력과 상징성 때문에 <키노>의 폐간 소식은 영화계와 영화잡지 독자층에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태의 핵심 원인은 만성적인 적자 구조와 시장의 축소다. 애초에 <키노>는 정성일 전 편집장, 이연호 현 편집장 등 편집부 주체들이 잡지의 방향과 성격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발행인을 구하는 수순으로 창간되었다. 창간 초기에는 영화 붐을 배경으로 시대의 요구를 선도하는 전략이 캠페인적인 효력마저 발휘하면서 발행 부수 5만부, 판매율 85%의 흑자 구조를 갖추었다.

주간지, 온라인 매체 부상으로 타격

그러나 발행 기업이 부도가 나고 IMF 때 호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0년 가을 온라인 <엔키노>에 브랜드명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새로운 물주와 결합했다. <엔키노>의 ‘무조건 지원’에 힘입어 <키노>는 잃어버린 독자 찾기에 나섰고 2년간 비교적 안정적인 조건에서 발행되었다. 그러나 2002년 여름부터 발행부수가 2만부 내외로 떨어지더니 최근에는 제작비 절감을 위해 1만5천부까지 줄였고, 제작 감소가 판매 감소를 초래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문화 콘텐츠 사업에 대한 발행인과 편집진의 태도인데, “양 노선의 운명적 갈등으로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당사자들의 최종 결론이다.

이런 결정과 관련해서 발행인의 악덕을 비난하고 <키노> 편집진을 순교자로 만드는 듯한 반응도 없지 않지만, 사태의 원인은 좀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데 있다는 것이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먼 데서부터 짚어보자면 우선 <키노>의 근본 노선에 대한 사회적 수용태도의 변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키노>가 창간된 때는 오랜 정치적 억압에서 벗어난 사회 특유의 치솟는 활력이 문화 폭발로 나타나고 그 혜택을 영화가 집중적으로 누렸던 시기였고, <키노>는 화려하고 공세적인 작가주의를 기치로 내걸면서 영화담론을 선점하고 선도해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평준화되고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관객이 등장하면서 ’키노적’ 패러다임으로 생산해내는 이슈에 대한 수요가 점차 저하되는 상황이다. “우리가 핵심 독자로 상정했던 층으로부터 ‘입장을 가진 어떤 글도 싫다. 정보만 달라. 내가 선택하고 판단하겠다’는 반응을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이연호 편집장)거나 “영화문화와 독자층의 변화를 절감했고 <키노>의 방향에 대한 논란은 비단 발행인의 요구뿐만 아니라 기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적인 현안이었다”(주성철 기자)는 내부의 목소리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영화잡지 전체의 시장성 문제, 특히 월간지에서 주간지로 중심 시장이 이동한 것도 <키노>에게는 불리한 요소다. 숫자면에서도 월간지는 3개이고 주간지는 4개이며 발행되는 횟수로 보면 주간지는 거기에다 다섯배를 곱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월간지는 광고가 고갈될 수밖에 없고 홍보 마케팅 대상으로서도 열세에 놓여 기사 운영에까지 지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타협의 여지가 적은 <키노>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영화 산업의 활력을 주간지가 대부분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키노>의 상징과도 같은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최근 활동 무대를 보아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더 나아가 온라인의 발달이 끼치는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종이 매체들이 인터넷 환경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으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키노>의 경우에도 잡지 자체는 시장에서 점차 위축되는 반면 온라인 <엔키노>는 지난해 8월 이후 안착 국면에 접어들었다. <엔키노>의 성장은 초기에 <키노>의 브랜드 파워와 충성도 높은 회원들에 힘입었으나, 온라인 매체의 속성상 스스로 발전하면 할수록 호흡 긴 잡지와는 다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얄궂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외부 환경 속에서 <키노> 편집진이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는 내부적 요인도 <키노> 폐간의 또 한축을 이룬다. 주간지와 온라인 매체의 융성 국면에서 독자와 영화계의 시선을 계속 붙들어둘 만한 이슈를 생산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정체성을 둘러싼 편집진 내부의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채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는 모습이 잡지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잡지를 ‘가볍게’ 만드는 유화 제스처가 새로운 시장에 먹히지도 않으면서 기존 독자들의 거부반응만 키운 셈이다.

대안모색은 불가능한가?

그렇다면 과연 대안은 있는가. 우선 ‘그대로 가라’는 요청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 열쇠를 쥐고 있는 김대선 발행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1999년 <키노>를 인수한 뒤 17억8천만원이 현금으로 들어갔고 지금도 매달 3천∼4천만원의 적자가 어김없이 누적된다. 영화인들조차 <키노>를 하나의 상징으로 여길 뿐 읽는 사람 별로 없고, 제작자들에게 읍소를 해봐도 광고를 주지 않는다. 내 목적이 <키노>를 통해서 돈을 벌자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70명의 직원이 있는 벤처회사이자 주식회사의 대표로서 지켜야 할 경제윤리가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키노>는 정신적 이념으로 자본가를 도산시키는 잡지다. 마켓과 콘텐츠가 순기능을 하지 않고 완전히 역행하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매체가 생명을 다했다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를 자본과 문화, 상업주의와 순수예술의 대립이라는 단순한 논리로 매도하니 허탈하다.”

편집진 내부에서도 현행대로의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데에 별다른 반박 논리를 갖고 있지 못하다. 시장에서의 실패가 명백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호혜적인 자본에 의지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제작비를 과감하게 줄이고 격월간이나 계간으로 변모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스스로 “답이 없다”며 씁쓸해한다. 예컨대 본격 비평지로 나갈 때 이를 감당할 필자층이 빈약한 현실도 걸림돌이다.

결국 적자를 획기적으로 줄이지도 못할 뿐더러 축소 환경에 맞는 틀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키노>가 호응을 얻은 것은 콘텐츠의 질뿐만 아니라 디자인, 구성, 인쇄, 지질 등의 미감, 외국의 고급 잡지와의 제휴 등도 큰 역할을 한다. 키노적인 만족감은 고비용 구조를 바탕으로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어떤 것이 변한다면 더이상 <키노>가 아닐 뿐더러 정신과 노선이 살아 있다 해도 시장 유지가 어려울 것이다.”(주성철 기자)

이 상황에서 유력한 논리는 문화 콘텐츠의 사업적 가치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라는 전략적 판단과 관련된다. <엔키노>의 성장이 <키노>라는 모(母) 브랜드의 반사 효과이며 향후 <엔키노>의 성장에도 여전히 기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발행인은 이에 대해 “초기 효과는 분명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 투자가 피해를 본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엔키노>의 발전 방향과 점차 괴리를 드러내서 지금은 마더 브랜드(mother brand)가 아니라 ‘그랜마 브랜드’(grandma brand)가 되었다”는 ‘현명한’ 자본가의 입장을 보였다.

<키노>를 독립시켜 내보내달라는 요청에 대해서는 “17억원의 투자로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를 정리하면서 인수할 사람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결국 <키노>는 운명적으로 자멸의 길을 걸어왔고 지금은 그 마지막 길목에 마주친 듯하다. 시장의 악마적 합리성이라는 벽 앞에 무릎을 꿇으며.

99권의 <키노>를 돌이켜보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키노>의 지난 족적을 돌이키는 것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키노>는 스스로 존경과 사랑이 우러나는 영화를 취사 선택하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태도를 고집스레 견지해왔다. 이 부분이 ‘편협한 작가주의’라는 공격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영화와 사회의 관계를 원론적으로 환기하고 일관되게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독자의 사랑을 받은 이유이기도 했고 통찰력의 근원이기도 했다. <키노>가 창간호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21세기 11명의 시네아스트’로 꼽았을 때 우리 중의 누구도 키아로스타미를 알지 못했었다. 그 외에도, 심혈을 기울인 긴 인터뷰, “뽕을 뽑고야 마는” 특집, 스타일 독법에 대한 강조 등이 저널의 한 범례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비주류, 독립영화, 퀴어영화, 아시아영화 등을 우리나라 영화담론의 핵심 카테고리로 끌어올린 것도 <키노>의 공로라고 할 것이다.

<키노>는 하나의 잡지 이름이자 자신의 생령(生靈)을 한국의 영화문화에 쏟아부었던 하나의 사조이기도 하다. 사조는 역사에 남는다.

초창기부터 8년 내내 <키노>를 지켜온 이연호 편집장은 “내가 어떤 선택을 했어야 옳았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키노 사람들’이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어떤 실책이나 미숙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제법 이성적인 의심을 가져볼 수 있다.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 혹은 하나의 매체가 두개의 서로 다른 시대의 요구를 감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천재는 늘 요절했다고 기록되는 것일까. 그렇게 보면 8년에 걸친 99개의 <키노>의 족적은 어쩌면 짧았던 것이 아니라 긴 역사인지도 모른다.

<키노>의 폐간 소식이 인터넷을 타고 퍼지면서 독자들의 반응이 속속 모이고 있는데 “가슴이 너무 아파서 내내 울고 다닌다”는 식의 격렬한 감정 토로가 많다. 잡지와 독자가 무언가 심층적인 것을 공유하는 데까지 나아간 관계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반면 <키노>의 ‘현학성’과 ‘공격적인 문체’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부담을 느꼈던 사람들은 “<키노>의 오만이 초래한 자업자득”이라는 식의 냉소적인 반응도 보인다. 이 와중에 특이한 것은 기존에 <키노>를 잘 읽지 않던 독자층이 때늦은 애정 고백과 반성을 토로한다는 점인데, 부담스러워서 읽지는 않았지만 살아 있어 주었으면 좋을 고급-비주류 문화에 대한 일종의 ‘죄의식’일 것이다. 마음 아파하는 다수가 죄의식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또 한명의 계몽된 부르주아가 나서거나, 현재의 발행인과 공적인 자본이 상호 호혜적으로 결합하는 길 정도일 것으로 보인다.

김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