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들에게 납치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려움에 떨다 한참 후에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알게 됐습니다." 어느날 새벽 3시 침대 위로 쏟아진 강력한 조명 때문에 잠을 깼던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한 건물 꼭대기층에 살고 있는 조나산 제럴드의 경험담이다. 할리우드를 끼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와 인근 지역은 지난해 4만4천 차례에 걸쳐 각종 영화, 상업광고, TV쇼 수천 작품이 촬영되는 등 활기가 넘쳐 흘렀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의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엔진으로 불리는 영화산업은 다른 한편으론 소음과 안면방해, 교통난을 야기하는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고 16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전했다.
웨스트우드나 퍼시픽 팔리사레스, 다운타운 등 일부 지역주민들은 견디다 못해 시 의회에 주민들의 촬영개입을 요구하지만 영화업계는 그렇게 할 경우 수천명의 일자리가 달려있는 프로덕션을 아예 다른 곳으로 옮길 수 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멜리사 페이택 미 영화협회 부회장은 "프로듀서들은 (촬영장소와 관련) 다양한 선택을 갖고 있다. 가까운 샌디에이고에서부터 멀게는 호주와 캐나다, 동유럽까지 다양하다"고 말했다.
고용효과나 '돈'의 위력 때문에 영화촬영은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되고 소음, 주차난 등으로 인한 숱한 피해는 주민들의 몫이 돼 주민들의 분노는 비등점까지 올라간 상태.
밴 니스 주민 조 몬토야는 시 의회에 "주거지역에 집을 샀지 내가 촬영장에 집을 산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불평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는 없다. 샌 퍼난도 밸리에서 다운타운과 웨스트사이드에 이르는 주민들은 거리혼잡과 주차장 폐쇄를 호소하는가 하면 촬영용 아크등 불빛과 총격ㆍ자동차 충돌장면에서 나는 총성, 끽끽하는 소리 등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또 영화업자들이 자신들을 저임금 도구담당이나 잔심부름꾼으로 부려먹는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LA 타임스는 덧붙였다.
LA는 이미 지난 1995년 영화제작자들에게 '원스톱'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엔터테인먼트산업개발공사(EIDC)를 발족시켜 경찰(LAPD)과 소방국, 도로국 등으로부터 일괄 촬영허가를 받게 해주는 등 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와 호주 등 일부 국가들이 재정적 인센티브까지 내걸며 미 영화업계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한 이유다.
할리우드영화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자 EIDC는 영화사들의 이탈을 막기위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촬영허가를 내줘 주민들이 미처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에코 파크에서 촬영된 케이블TV 쇼 '몽크(Monk)'의 경우 주민들이 거주지역에서 차량충돌 장면을 찍지 못하도록 청원을 내기로 하고 72시간만에 100여명의 서명을 얻어냈으나 이미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고 청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등 주민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다고 타임스는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