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보조금 지급한다"에 영화계 거센 반발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둘러싼 논란이 또다시 불붙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이후 경제 부처 관료들의 스크린쿼터 축소 또는 폐지 발언의 수위가 높아지고, 이에 몇몇 언론들이 가세해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을 위해선 걸림돌인 스크린쿼터제를 축소 또는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상황. 이에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이하 문화부)는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영화계 또한 시민사회단체들과 연계해서 “BIT 체결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그 어느 때보다 갈등은 첨예한 양상이다.
문화부는 지난 6월7일, 부처 홈페이지에 올린 ‘스크린쿼터와 관련한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한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 이창동 장관의 6월5일 발언과 관련 언론이 쏟아낸 질타는 “잘못된 사실에 근거한 부당한 비판”이라고 반박하고 “스크린쿼터는 영상산업 전반에 걸친 핵심 문화정책”임을 재차 강조했다. 앞서 이 장관은 6월5일 기자들과 만나 “BIT가 40억달러의 투자 효과를 가져온다는 일각의 주장 자체는 근거가 취약하고 (중략) 투자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이걸 한국의 미래산업인 영상산업과 바꿀 수는 없다”고 말하고 “청와대에서 무슨 결정을 한 것처럼 예단하고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몇몇 언론들은 6월1일, 노무현 대통령이 재계로부터 BIT의 조속한 체결을 건의받고 보좌진에게 해결방안을 마련토록 지시한 바 있음을 들어 이 장관의 발언은 국익을 우선해야 할 장관의 본분을 망각한 영화인으로서의 그것이라는 내용의 비난을 가했었다.
한편, 스크린쿼터와 관련 심상치 않은 상황이 전개되자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영화인회의 등 영화계 제단체들도 민주노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과 함께 6월12일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긴급기자 회견을 갖고 “ 문화권을 비롯 사회적 가치와 공공성을 파괴하는 한-미투자협정 및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관련기사 20쪽). 청와대도 이를 방관할 수만은 없는 일. “정부의 방침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한 바 있는 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은 6월13일, 영화인, 학계 인사들을 초청,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장미희(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김혜준(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양기환(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사무처장), 이창무(서울시극장협회 회장), 노재봉 전 총리, 최병일 이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 7명이 이날 참석자. 재정경제부, 외교통상부, 문화부 등 관계부처 공무원도 함께 배석했다.
이날 자리에선 경제계쪽을 대변한 인사들이 쿼터 축소와 연동하여 보조금 지급안등을 제시했으나 영화인들은 “할리우드가 몇년 전부터 제시한 안이 어떻게 우리쪽 제안이 될 수 있느냐”며 “쿼터 현행 유지가 국익을 위한 최선이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당분간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영화계는 “공약으로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를 내세웠던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가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