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자가 BIT와 스크린쿼터 협상과정 분석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논란이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행정학자가 양면게임(two-level game) 이론을 이용한 한미 투자협정(BIT)과 스크린쿼터의 협상 사례를 분석해 눈길을 끌고 있다. 김정수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행정학회와 한국정책학회가 `21세기 거버넌스 시대의 한국 행정학과 정책학'이란 주제 아래 20∼21일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개최할 하계공동학술대회에서 논문 `스크린쿼터의 힘-양면게임 이론을 응용한 한미투자협정 협상사례 분석'을 발표할 예정이다.
88년 로버트 퍼트남이 창안한 양면게임 이론은 국제협상을 외교라는 바깥쪽 게임과 국내정치라는 안쪽 게임이 동시에 진행되는 게임으로 보고 양자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한 것이다.
국내적 비준을 받을 수 있는 국제적 합의의 집합을 윈셋(win-set)으로 보고 이것이 크면 클수록 타결 가능성이 높다. 윈셋의 크기는 △국내 여러 집단의 이해 및 역학관계 △국회의 비준절차 등 국내 정치적 제도 △국제교섭 담당자의 전략 등 대략 세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미리 배포한 논몬을 통해 김교수는 한미 투자협정 협상과정을 양면게임 이론 측면에서 보면 전형적인 비자발적 배신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 정부가 98년 먼저 체결을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협상을 추진하다가 스크린쿼터라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의제에 발목을 잡혀 결국 협상 전체가 좌초됐다는 것이다.
양국 정상의 투자협정 조기체결 합의에도 불구하고 협상 대표들이 스크린쿼터에 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협상 자체가 마비된 이유는 양국의 윈셋이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
한국 정부는 스크린쿼터의 단계적 축소안을 검토했다가 영화인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떼밀려 시간이 지날수록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미국 정부 역시 국내 경제에서 문화산업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커졌고 영화산업의 해외 의존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스크린쿼터를 투자협정 체결의 전제조건으로 인식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정부의 정책결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힘들어진데다가 다른 문화산업에 비해 영화에 대한 우대정책이 오랫동안 시행돼 왔고 스크린쿼터제도가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적법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영화인들이 감정에 호소하는 문화애국주의 전략을 채택하는 동시에 다른 사회집단들과 폭넓은 연대를 구축한 것도 크게 작용했다.
김교수는 "스크린쿼터를 둘러싼 논의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정에서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너무나 강경했던 나머지 자유무역을 선호하는 견해의 공개적 표현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90년대 중반의 사회 분위기와 흡사하다"면서 "한미 투자협정의 협상 타결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미국 측의 윈셋이 확대될 가능성과 국내 영화계의 입장이 누그러질 가능성이 없다는 가정 아래 93년 리처드 프리먼이 내놓은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그 하나는 국제협상의 타결로 얻어지는 이익의 재분배를 통해 협상에 반대하는 국내집단의 양보를 얻어내는 `이면보상' 전술이며, 다른 하나는 협상 의제를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라고 다시 정의함으로써 국내집단의 저항을 약화시키는 `사안 재정의' 전술이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