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이 영화에 주목하세요
촬영 초읽기에 들어간 화제의 뉴 프로젝트 11편 미리 보기
현상적으로 영화는 관객이 소비자이고 제작자나 감독이 생산자인 시장이다.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라오고 반대로 공급이 수요를 만들기도 한다.하지만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은 관객과 제작자의 의도대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충무로에서 스타급 배우는 무엇보다 중요한 변수다. 스타급 배우들이 한정된 상황에서 수많은 영화기획이 배우에게 간택받기 위해 줄을 선다.2003년 초여름의 충무로 풍경도 그렇다.캐스팅이 확정되면 제작자뿐 아니라 감독도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투자위축이 심각했던 올해지만 제작편수가 많이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대신 준비하는 작품이 많은 만큼 캐스팅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양상. 몇 가지 고비를 넘기고 조만간 첫 촬영에 들어갈 영화 11편을 모아봤다.이들 영화의 감독들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앞으로 우리가 보게 될 영화의 모습을 그려보자. 편집자편집 심은하 eunhasoo@hani.co.kr
윤종찬 감독의 <청연>조선 최초 여류비행사의 꿈과 사랑 그리고…
Director's Story
“그렇게 지독한 인간은 처음 봤다. 다시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소름>에 참여했던 스탭 가운데 한 사람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이야기를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살수차로 뿌리는 비에 그냥 눈을 뜨기도 힘든 상황인데 배우에게 눈을 위로 치켜뜨게 하면서 몇 시간씩 촬영하는 모습이 비인간적으로 보였던 탓이다. 하지만 그런 집요함이 만들어낸 화면은 훌륭했고 <소름>은 2001년에 나온 최고의 영화 가운데 하나가 됐다.
“현장에선 다시 안 볼 것처럼 했던 사람들이 좀 있다. 스탭이나 배우나 다들 힘들었으니까. 그렇게 작업해서 안 좋은 영화가 나오면 정말 다시는 나랑 일하지 않을 텐데 다행히 결과가 나쁘지 않아서 다시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현장에서 힘들고 말썽이 있더라도 인간적으로 미안해서 작품의 어떤 부분을 양보하면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실제로 <소름>은 윤종찬(40) 감독 외에 배우 장진영, 김영민, 촬영감독 황서식 등의 경력에 큰 도움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현장에서 보여준 비타협적인 면모는 <소름> 이후 대학 영화과 교수직을 그만둔 데서도 드러난다. 그가 “벼랑 끝에서 작업할 필요”를 느끼면서 <소름> 이후 1년간 매달린 작품은 씨앤필름에서 준비하던 <그녀의 아침>. 하지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자 지난해 영화사를 씨네라인-투로 옮겨 <청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Behind Story
일제시대 최초의 여자비행사가 됐던 박경원의 삶을 다룬 <청연>(靑燕: ‘푸른 제비’라는 뜻으로 박경원이 일본에서 조선을 거쳐 만주로 가는 장거리 비행을 하기 위해 탔던 비행기의 이름)은 영화사에서 시나리오를 만들어서 연출제의를 한 영화다. 대체 윤종찬 감독은 박경원이라는 생소한 이름에서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영화라 처음엔 상당히 주저했다. 하지만 박경원의 삶을 떠올려보면서 마음이 움직였다. 남자가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도 신기해하던 시절에 여자가 혼자 힘으로 온갖 불평등한 조건을 물리치고 비행사가 됐다는 것, 그리고 비행기를 몰고 현해탄을 건너다 조선에 이르지 못한 채 사고로 죽었다는 것, 전형적인 영웅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력있는 캐릭터였다.”
현재 남아 있는 박경원에 관한 기록은 많지 않은데 윤종찬 감독은 그 점에 오히려 끌렸다. 전기영화지만 충분히 영화적 허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 엔딩의 비극이 정해진 상태에서 비극으로 가는 이야기 구조를 상상해내는 일은 온전히 감독의 몫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 윤종찬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복엽기가 하늘을 나는 장면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같은 영화를 보면 항공촬영을 해서 화면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투기가 날아다니며 싸우는 영화라면 안 했을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드는 화면을 만들고 싶다.”
그는 <청연>이 블록버스터급 영화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현재 예상하는 순제작비만 47억원. 복엽기를 동원한 항공촬영은 미국이나 호주의 전문가들을 동원할 예정이며 일제시대의 풍경은 중국의 세트장에서 찍을 예정이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큰 영화를 찍고 싶은 욕심이 들 거다. 최근 국내 블록버스터들이 실패하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감독으로서 책임감도 느낀다. 블록버스터의 주류가 볼거리라면 <청연>은 캐릭터와 디테일을 잊지 않으면서 볼거리를 결합하겠다는 생각이다. <소름>을 만들 때도 저 사람이 난데없이 왜 공포영화를 찍지, 그랬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청연>의 시나리오는 처음엔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가 썼고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박경원, 이정희, 한지혁이라는 세명의 중심인물이 만들어졌다. 영화는 박경원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하지만 중심부에 이들의 삼각관계가 들어간다. 주인공 박경원 역에 <소름>의 장진영이 출연할 예정이며 8월 말경 크랭크인해 2월까지 촬영을 끝낼 예정이다.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제작사 씨네라인-투 출연 | 정진영 개봉예정 | 미정
S t o r y
1901년 4녀1남 중 넷째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 ‘원통’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박경원, 그녀는 비행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에 건너가 비행학교에 들어간다. 학교를 다니기 위해 택시기사로 돈을 벌어야 했던 박경원은 택시운전을 하다 한지혁이라는 남자를 알게 된다. 일본 비행학교의 또 다른 한국 여인 이정희의 배다른 오빠인 한지혁은 박경원에게 호감을 갖지만 둘의 사이가 가까워지자 오빠를 짝사랑하던 이정희는 박경원과 서먹해진다. 어느 날 한지혁과 박경원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
" 아뵤~ " 대학이 인생의 전부야?
Director's Story
2002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10년여 만에 화려하게 충무로에 돌아온 유하 감독은 재기의 기쁨을 누릴 여유가 거의 없었다. <결혼은…>이 마무리되기 무섭게 신작 구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현승 감독이 “싸이더스의 김기덕 감독”이라고 농을 던졌을 정도로 확실히 그의 행보는 예사롭지 않은 속도다. 유하 감독이 이처럼 숨가쁘게 몰아치는 것은 신작 <말죽거리 잔혹사>가 그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말죽거리 인근의 S고를 다니던 시절 우울하고 괴로움으로 가득했던 기억에 기반한 이 영화는, 그러니까 유하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90년대 중반,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에게 영화화를 제안했다가 “한마디로 거절당했”던 이 작품을 마침내 만들게 된 그의 표정에서 일종의 비장미가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이 영화를 절실하게 느끼는 건 단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하는 이야기라서만이 아니다. 10대 시절 그의 아이콘이었고 현재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이소룡과 그의 무술 절권도의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소룡이 창시한 절권도는 오직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무술이라는 점에서 폄하되기도 했지만, 품새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무술과 선을 그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혁신이었다.” 유하 감독이 보기에 절권도는 품새라는 유일무이한 가치에 대해 도전, 결국 이를 파괴했다. 결국 영화에서 주인공 현수가 대학 입학이라는 단일한 가치를 내세워 교사, 선후배, 동급생간의 폭력을 조장하거나 묵인하는 학교와 정면승부하는 것은 제도교육이라는 품새를 파괴하기 위한 절권도 정신의 구현인 셈이다. 시나리오 초고 제목이 <절권도의 길>이었던 것도 이같은 사정에서 비롯됐다.
Behind Story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은 그가 1995년 산문집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무림일기>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등의 시집에서 엿보인 ‘키치 중독’의 근원을 스스로 찾기 위해 이 책을 쓰던 그는 이소룡이라는 궁극의 존재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에게 이소룡은 10대 시절 갑갑한 학교생활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이소룡이라는 비상구를 통해 현실을 벗어난 뒤 그는 대중문화의 바다와 만났고, 이는 키치적인 정신으로 발전했다.
비슷할 때 읽은 무라카미 류의 소설 도 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나는 고교 시절 나에게 상처를 준 선생들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그들은 정말로 소중한 것을 나에게서 빼앗아가버렸다…. 유일한 복수 방법은 그들보다 즐겁게 사는 것이다” 등의 내용이 담긴 서문을 보며 진심으로 공감했던 그는 자신의 고교생활을 돌아보게 됐다.
그는 영화를 만듦에 있어서도 ‘절권도의 길’을 따를 생각이다. 즉, ‘모든 복잡을 뚫고 단숨에 핵심에 도달한다’는 절권도의 정신처럼 이야기의 굵은 선을 살리는 데 힘을 모을 계획이라는 것. 우스운 에피소드를 나열하거나 잡다한 수식 없이 정통 드라마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제작진이 생각하기에 이 영화의 관건은 30년이란 시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다. 일단 교육현장이 본질에선 크게 바뀐 게 없기에 요즘 아이들도 공감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이소룡의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한 신세대들과 호흡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유하 감독이 주인공 권상우 등에게 <이소룡에게…>와 이소룡 DVD 세트를 선물한 것도 젊은 연기자 스스로 감을 잡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순제작비 27억원을 들여 6월 중순부터 4개월 가량의 일정으로 촬영에 돌입하는 이 영화는 상당 부분이 군산에서 촬영된다. 70년대 서울 말죽거리를 연상케 할 공간이 흔치 않아 연출부롸 제작부가 꽤나 고생했다는 게 후문이다. 글 문석 ssoony@hani.co.kr ·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
제작사
싸이더스
출연 |
권상우, 이정진
개봉예정 |
12월
S t o r y
70년대 서울 말죽거리에 자리한 정문고등학교. 전학생 현수(권상우)가 나타난다. 전수학교에서 정규학교로 전환된 지 얼마 안 되는 이곳에선 교사들과 학생들의 폭력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학교에서 주먹으론 손에 꼽히는 우식(이정진), ‘포르노 장사꾼’ 햄버거 등과 친구가 된 현수는 어느 날 버스 안에서 인근 여학교의 유진(한가인)을 보고 바로 사랑의 열병에 빠진다. 이 사실을 모르는 우식은 유진과 사귀게 되고, 현수의 가슴은 미어진다. 갑갑한 학교 속에서 현수와 우식네 친구는 선도부원 종훈과 사사건건 부딪치고, 사소한 충돌이 잦아진다. 마침내 우식과 종훈은 정면충돌하고, 우식과 현수의 관계도 멀어지게 된다.
박흥식 감독의 <인어공주>
삶의 고비를 넘고 또 넘는 어머니의 자화상
Director's Story
<그녀에게> <일 포스티노> <지중해> <파이란>, 아사다 지로의 소설. 다 박흥식(38) 감독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누군가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목표로 삼는 게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데뷔작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온기와 희망을 찾으려는 감독의 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첫 영화로 박흥식 감독은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섬세한 디테일에 대한 찬사와 디테일에만 매몰됐다는 비판이 나란히 제기됐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빨리 잊으려고 했다.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 그게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빨리 다음 영화를 찍는 편이 좋았을 텐데 싶다.”
그는 <인어공주> 전에 일본 만화가 원작인 <최종병기 그녀>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비픽처스의 조민환 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인간적이고 미니멀한 SF영화가 가능하겠다는 판단에서 수락한 프로젝트. 하지만 판권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3개월 만에 손을 떼게 됐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를 찍기 전부터 제안이 있었던 <인어공주>에 착수하게 됐다. “<인어공주>는 6년 전 아이찜 시놉시스 공모에 당선된 것이었다. 그때 심사위원이었던 이창동 감독이 내가 연출하면 좋겠다고 말했고 <최종병기 그녀>를 그만두자 다시 제안을 했다. 이창동 감독이 보기엔 내가 세상을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걸로 보이나보다. 자긴 절대 그렇게 안 만들면서 말이다.” <인어공주>는 이창동 감독의 동생인 이준동씨가 대표인 나우필름의 창립작품이 될 예정이다.
Behind Story
<인어공주>는 현실과 판타지가 교차하는 이야기다. 딸은 돈만 밝히는 사나운 어머니를 혐오하지만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지금 모습과 상반된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삭막한 현실의 이면 혹은 과거에 존재하는 현실과 정반대되는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주고 싶었다. 어떤 사람을 볼 때 겉모습으로만 판단하게 되지만 과거에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걸 알게 된다고 현실의 모습이 바뀌진 않겠지만 그를 이해할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박흥식 감독은 이런 맥락에서 어머니의 아름다운 사랑을 그릴 생각이다. 딸은 어머니가 젊은 시절 해녀로 일하면서 집배원인 아버지를 사랑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된다. “이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인어처럼 바다를 유영하는 해녀가 보이고 잠시 뒤 카메라가 물 밖으로 빠져나오면 수증기로 가득 찬 대중목욕탕 내부가 된다. 검은색 속옷을 입고 때를 밀어주는 여자, 살이 찌고 주름이 깊은 어머니가 거기 있다.”
박흥식 감독은 제주도에서 해녀가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경외감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물질을 하는 그 모습은 험한 세월을 살았던 어머니들의 거울처럼 보였던 것이다. <인어공주>는 여주인공이 1인2역을 해야 하는 영화다. 현실에선 딸로 나오고 판타지에선 딸과 어머니, 두 사람을 연기하게 된다. “한 화면에 똑같이 생긴 두 사람이 들어오면 일반적으로는 소격효과를 일으키지만 이 영화에선 관객의 동화를 끌어내는 장치로 사용할 생각이다. 관객을 판타지에 몰입시키는 게 중요한 영화다.” 1인2역을 해야 하는 만큼 여주인공의 비중은 막대하다. 제작진은 현재 캐스팅을 최대 관건으로 여기고 있다.단편영화 <안다고 말하지 마라>로 널리 알려진 송혜진씨가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으며 캐스팅이 확정되는 대로 촬영에 들어갈 계획.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
제작사
나우필름
출연 |
미정
개봉예정 |
미정
S t o r y
24살 처녀 나영은 부모의 불화가 지긋지긋하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목욕탕에서 때미는 일을 하는 어머니는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부부로 함께 살았는지 상상이 안 될 만큼 사이가 나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암에 걸렸다고 말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어머니는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음날 아버지는 집을 나간다. 뉴질랜드 견학을 눈앞에 두고 있던 나영은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찾으라고 설득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할 수 없이 직접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나선 나영은 외딴섬에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기이한 상황에 처한다. 지금 자기 모습과 똑같은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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