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선 감독, 카메라 뒤에서는 배우' 영화배우나 탤런트, 연극배우 등 연기자들의 영화 감독 데뷔가 잇따르고 있다. 현재 단편이나 장편 영화의 연출을 마쳤거나 기획중인 감독은 정우성(사진), 유지태, 김인권, 박광정, 장두이 등.
할리우드에서 배우의 감독 데뷔는 이미 흔한 일이다. 워런 비티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폴뉴먼, 케빈 코스트너, 숀펜, 로버트 레드포드, 조디 포스터 등이 배우 못지 않게 연출가로도 성공을 거뒀고, 최근에는 존 말코비치(위층의 댄서), 조지 클루니(고백), 니컬러스 케이지(소니), 덴젤 워싱턴(앤트윈 피셔) 등이 줄줄이 연출 데뷔작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영화 출연을 겸한 감독들은 여균동(박봉곤 가출사건), 류승완(오아시스), 배창호(개그맨) 등이 있지만 인기배우의 감독 '변신'은 1970년대 초반 '연애소설' 등 세 편의 영화를 연출했던 강신성일씨 정도만 눈에 띈다.
최근 감독으로 변신한 연기자 중 가장 먼저 장편영화를 선보인 스타는 <송어>, <박하사탕>, <아나키스트> 등의 영화와 TV드라마 '내 인생의 콩깍지'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김인권.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작품으로 만든 <쉬브스키>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부문에 초청돼 <클래식>, <품행제로>, <역전에 산다> 등 상업영화와 함께 상영된다.
'양아치' 태주라는 청년을 주인공으로 세상에 대한 열등감,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 등을 흑백을 넘나드는 화면과 핸드헬드 카메라로 표현한 영화. 김인권은 영화 <송어> 연출부로 일하던중 배우로 캐스팅된 이력이 있다.
<비트>, <무사>의 인기스타 정우성의 장편 감독 데뷔작은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 `궁극적인 꿈은 감독'이라고 평소에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 만큼 정우성의 연출 수업은 꽤나 오래됐다. 지난해에는 그룹 god의 노래 세 편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LOVE b(플럿)」을 연출해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상영한 바 있다. 장편 데뷔작은 '장르성이 짙은 사랑이야기'로 직접 출연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이후 최근 영화 <역전에 산다>까지 개성있는 조연연기자로 인정받고 있는 박광정의 경우는 이미 연극 연출가로 이름을 알린 경우. 화 감독 데뷔작으로 하일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진술>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서에 잡혀온 한 40대 대학교수의 진술을 통해 펼쳐지는 사랑이야기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로 문성근이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한편,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가 연출한 단편영화 <자전거소년>도 부산아시아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호평을 받고 있다. 소녀에게 잘 보이려고 자전거타기 연습을 하는 순진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이달말 열리는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밖에 <깜보>, <뚫어야 산다> 등에 출연한 배우이자 연극연출가 장두이도 9월 촬영에 들어가는 '세븐택시'로 영화감독으로 명함을 내밀 계획이다.
연기자 출신 연출가는 출연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이끌어 낼 수 있고, 촬영장 분위기에도 익숙하다는 데서 장점을 찾을 수 있다.
영화 평론가 조희문씨는 "연기자들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직접 말하고 싶은 것을 연출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느끼는 것 같다"며 "'영역의 혼합'을 통해 연기와 연출의 폭이 각각 넓어진다는 점과 다양한 이력의 연출가가 등장한다는 데서 바람직한 현상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개그맨이나 만화가 등 연출 능력이 충분치 못한 감독이 연출한 몇몇 영화는 영화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성공하지 못한 채 해프닝으로 끝난 바 있다"고 지적하며 "꾸준한 연출수업을 통해 제작 환경 전반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감독 데뷔만 서두른다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