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애니메이션이란 말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피리 부는 소년’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사정은 아닐 듯하다. 화선지에 붓으로 그린 유려한 선이 휘감기는 듯, 번지는 듯 펼쳐지는 화면을 보고 혀를 내두르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되랴. 그리고 수묵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상명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김정화(34)씨도 그중 하나다. 딸아이를 키우다 우연히 보게 된 이 작품은 그녀의 인생에서 말 그대로 터닝포인트가 돼버렸다.
“동양화를 하면서 회화의 한계를 느껴왔어요. 고급문화로만 인식되다 보니 전시회 찾는 사람도 정해져 있고, 그러다보니 ‘소통’의 문제가 제겐 풀리지 않는 숙제였죠. 어린이용 그림책 일러스트도 해봤지만 아니었고요. 그런데 애니메이션이 그 해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계원조형예술대 애니메이션학과를 들어갔고 컴퓨터애니메이션작가공동체인 ‘퓨처 아트’를 거쳐 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전공 2기로 작품 활동에 나섰다. 자신이 그린 동양화를 움직이게 해보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슴에 품은 채.
그렇게 처음 만든 작품이 <사>(死, 1996)다. 감정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가졌던 이 작품에 이어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에 삽입된 애니메이션 <돼지마왕>, 가수 리아의 뮤직비디오 <눈물>의 연출 및 제작을 맡아 그림의 폭을 넓혀나갔다.
1998년 내놓은 <비>(4분)는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 엄마를 기다리다 그냥 비를 맞고 집에 가게 된 초등학교 여자아이를 수묵애니메이션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아이의 풍부한 표정변화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머금게 하는 이 작품은 그해 한국영상만화대전에서 미술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이듬해 시카고, 뉴욕, 시애틀 국제어린이애니메이션페스티벌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아이에게 제대로 못해준 감정을 담아보려고 했어요. 한국 어머니의 모성이란 결국 한국의 자연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도 싶었고요.”
2002년 동아LG애니메이션공모전 신인감독상, 대한민국 영상만화대상 특별상 수상작인 <여름>(A Day, 12분)에서는 본격적인 ‘작품’의 냄새가 풍긴다. 신기는 물론 보기도 아까운 새 운동화를 그만 물에 빠뜨리게 된 시골 아이가 겪는 마음의 변화를 풍부한 번짐의 효과를 이용해 표현해냈다. 사용한 소프트웨어는 페인터, 프리미어 애프터 이펙트, 포토숍 정도. 별반 특이할 게 없다. 다만 ‘물틀’이란 툴을 통해 손맛을 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컴퓨터로만 작업하는데 하다보면 컴퓨터 특유의 만질만질한 게 참 싫을 때가 있어요. 원래는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고 그걸 스캔받아 마무리 작업만 컴퓨터로 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좋은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현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따스하고’의 대표로 있으면서 전주대와 청강문화산업대에 강사로도 나서고 있다. 현재 구상 중인 작품은 <달집>. 달이 차면 기울지만 또다시 차오른다는 테마로 할머니와 엄마와 손녀로 이어지는 여인 3대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귀띔이다.
“요즘은 비주얼적인 감각이 너무 넘치는 사회 아닌가요. 그런 것들이 오히려 더 감각을 둔화시키는 것 같아요. 전 사소하고 평범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로부터 아름다움을 찾고 싶습니다.”정형모/ <중앙일보> 메트로부 기자 h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