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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란, 비겁함이란 <존 휴스톤의 전사의 용기>
홍성남(평론가) 2003-06-11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적군들을 바라보며 전투를 준비하는 병사들의 머리 속에는 과연 어떤 유의 상념들이 스치고 지나갈까? <존 휴스톤의 전사의 용기>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 병사가 임박한 전투를 맞이한 그 순간 떠올린 생각은 “이제 국가를 위해 이 한 목숨 걸고 용감하게 맞서 싸우리라”와 같은 ‘비장한’ 각오가 아니라 “적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서서는 우리에게 정중히 사과하면 좋으련만” 하는 ‘어림없는’ 공상쪽이다.

어쩌면 이런 공상이야말로 무모한 용기로 단련되지 못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훨씬 개연성 있는 것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전사의 용기>는 이 장면만 제시하더라도 대충 어떤 식의 전쟁영화일 것인가, 파악이 되는 그런 영화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쟁영화로서 이것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거의 로봇처럼 행동하는, 무지하다고 할 정도로 용감무쌍한 전사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라 이제 눈앞에 펼쳐질 전투를 두려운 심정으로 대하는 비범하지 못한 군인들이 등장하는 영화이며, 그런 만큼 전자의 인물들이 전장을 누비는 영화들보다는 좀더 리얼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전쟁영화인 것이다.

남북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1862년 봄. 북군 소속의 병사인 헨리(오디 머피)는 입대 뒤 처음으로 전투를 맞게 되는데, 실제 전투에 들어가기 전부터 마음속으로 꽤 심한 두려움을 갖는다. 드디어 헨리가 소속된 부대가 전투에 돌입했을 때 심적인 공황 직전에까지 도달한 그는 전장에서 도망치기에 이른다. 일종의 탈영병으로서 마치 길을 잃은 듯 방황하는 헨리. 우연히 자신의 소속 부대로 되돌아온 헨리는 그를 전투 도중 죽었던 걸로 알고 있던 동료들에게 부상을 입었다고 거짓말을 해대며 자신의 비겁함을 감춘다. 그리고 또다시 전투가 시작된다.

영화가 시작될 즈음 그 영화 속 병사들은 지금껏 훈련만을 받는 게 너무 지겹다고 느끼는 상태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권태감은 더이상 느낄 새도 없다고 할 정도로, 이후 영화는 이어지는 전투상태 속으로 그들을 데려간다. 이제 헨리를 비롯한 영화 속 병사들은 전장을 자신의 환경으로 인식할 때가 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그들이 벌이는 전투 행위를 보여주는 데 골몰하는 것은 아니다. 병사들은 분명 전투에 돌입한 상태이건만 영화는 그들과 맞붙어 싸울 적의 모습조차도 잘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니 일단 근사한 전투장면이 나올 리는 만무하다. 이건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전투를 화려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낼 구실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연약한 심성을 들여다볼 기회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전사의 용기>의 주인공 헨리는 많은 전쟁영화 속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심한 두려움에 떨고 있고 또 그런 비겁한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자기 경멸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자이다. 그래서 그는 전투가 벌어지기 전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지만 동료들 앞에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의 약한 속내를 보이지 않으려 애쓴다. 영화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이 현실감 있는 인물을 통해 용기와 그 반대말인 비겁함이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려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우리는 깃발을 들고 적진을 향해 과감하게 돌진하는 헨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 과연 그는 이 지점에 이르러 새로운 상태로 도약, 혹은 흔한 말로 ‘성장’한 것일까? 그러나 여전히 그의 얼굴 위에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는 미묘하게 불안한 표정은 그렇지 않다고 속삭인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을 향해 무거운 짐처럼 짓누르는 용기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고 ‘만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결코 적절하다고 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영화가 특유의 강직한 톤의 목소리를 내는 내레이션을 통해 그가 전투를 거치며 “진정한 남자”로 변신했다고 ‘강변’한다는 점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영혼을 새롭게 했다”면서.

그러나 이건 존 휴스턴 감독 자신의 원래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사의 용기>는 스튜디오쪽과 감독 사이의 심한 갈등을 보여준 사례로도 유명한데, 제작을 마친 휴스턴이 그의 차기작이 될 <아프리카의 여왕>를 찍으러 아프리카로 간 사이에 스튜디오쪽에서 이 설명적 내레이션을 새로 넣고 편집도 새로 해 원래 90분 정도이던 영화 상영시간의 21분가량이 잘려 나갔던 것이다. 우리가 현재 볼 수 있는 <…전사의 용기>는 이 스튜디오 편집판이다. 그럼에도 생명력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이 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휴스턴은 영화를 만들 당시 동료들에게 “이건 걸작이 되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닐 테고”라고 말하곤 했다는데 원래의 감독판은 정말이지 지금 남아 있는 버전보다 훨씬 뛰어난 걸작이었을까? 홍성남/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The Red Badge of Courage, 1951년감독 존 휴스턴출연 오디 머피, 빌 모들린화면포맷 풀 스크린오디오 돌비디지털 모노자막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일본어, 중국어, 타이어, 인도네시아어출시사 워너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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