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 영화는 이름처럼 공상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나 홀로 몽상’이 아니라 공중에게 드러낸 공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상과학영화를 통하여 시대의 공기를 느끼기도 한다. 우주인이 악할 때도 있고, 이티처럼 친근하게 묘사될 때도 있는데, 그것이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공상과학 영화에 속하는 <매트릭스 2 리로리드>를 보노라면 이제 인간들이 가공의 주체인 우주인쯤은 우습게 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인간들은 과학 문명에 대한 막연한 공포 혹은 신비화를 벗어나서 정면으로 논쟁을 벌이고자 하는 것이다.
1편에 이은 <매트릭스 2>는 현재의 과학 문명을 통칭하는 매트릭스 시스템에 저항하는 인간들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인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시온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 등은 기계들의 공격을 해결해야 될 운명에 처한다. 그래서 네오 등은 예언자인 ‘오라클’을 만난 후 ‘키메이커’를 만나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게 전부다. 간단해 보이지만 영화는 초반 한 시간 동안 친절한 배경 설명과 장대한 스펙터클을 제시한 후 나머지 한 시간은 장난 같은 묘기 대행진의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인간은 구경하는 동물’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이 영화는 정말 본능에 보답하는 영화다. 그리고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영화는 화답한다.
우리에게는 껄끄럽지만, 서양 특히 미국산 영화가, 유대인들이 다수 점하고 있는 미국 영화 산업이,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백인 사회가, 노골적으로 ‘시온’이라는 지역명을 선택한 것은 유치하고도 자연스런 일이다. 또 검은색 사제 복장과 중국 쿵푸 복장이 혼합된 주인공 네오의 의상을 포함한 몇 가지 설정 등은 실소를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이 시대의 가장 대중적인 철학적 관점을 맛보여준다. 그것은 우리 존재와 존재의 운명에 대한 질문, 컴퓨터 문명에 대한 스무고개 넘기 등을 통하여 넓게 얘기할 공통의 주제를 던지기 때문이다. 또 보다 특수한 것도 있다. 이성과 과학적 논리 외에는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사물 사이의 교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물론 그들은 눈여겨보지 않았겠지만, 마음의 기운이 ‘운동’한다는 주장도 깔려 있다. 액션 신의 동작들 중에 물리적 운동 법칙을 따르지 않는 부분은 이런 맥락에서 볼 만한 것들이다. 물론 황당하게 보자면 황당한 주장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매트릭스 2>가 주체가 빠진 포스트모던한 태도에 대해 시비를 건 것은 사실이다. 또 가공의 주체인 우주인을 내세워 호들갑을 떤 과거 공상과학 영화를 넘어선 것도 사실이다. 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 이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