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 12. 07
<살인의 추억> 현장에 놀러갔다.
송강호와 김상경이 취조실에 있는 한컷을 봤는데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앵글, 연출, 연기의 삼박자가 완벽한 호흡을 이루며 전율을 느끼게 했던 경험은 <복수는 나의 것> 현장 이후 처음이었다.
봉준호의 눈빛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좋은 스탭과 훌륭한 연기자와 호흡을 맞춘 봉준호의 치밀함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이거 분명히 우리랑은 적어도 한달 정도 차이나게 개봉하는 거지?”
촬영 전까지만 해도 한달 이상 사이를 두고 서로의 영화를 개봉하는 일정으로 촬영을 하자는 약속을 했던 봉준호.
그런데 봉준호의 태도에 싸늘함이 느껴졌다.
“글쎄 잘 모르겠네요. 좀더 늦춰질 것 같기도 하고…. 김무령 PD한테 물어보세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배… 신… 자.”
나는 김무령에게 뛰어가(물론 바로 앞에선 여유있는 폼으로 걸어갔다) 개봉일이 우리랑 부딪치는 거 아니겠지? 하고 물었다.
“<장화, 홍련>이 뭐가 걱정이에요?”
“무슨 소리야? 이건 완전히 레알마드리드랑 강북조기축구회와 붙는 거나 다름없지.”
“네? 여보세요? 감독님 잠깐만요. 여보세요. 아… 어디라구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 추천위원회라고요?”
내 말을 완전 무시하고 휴대폰을 들고 나가버리는 김무령.
그날 밤 정말 무시무시한 꿈을 꾼다.
“안 돼!”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깬다.
# 2002. 12 .21
조명부 막내 귀염둥이 선희 사고 일어남.
천장에 조명기를 설치하려다 발을 헛딛는 바람에 떨어짐. 긴급후송.
오랜 시간 동안 답답한 세트 안에서 촬영을 강행했기 때문에 모든 스탭들이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져 있다.
세트장 분위기가 조금씩 흉흉해졌다.
편하게만 생각했던 세트 촬영이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몰랐다.
게다가 너무나 큰 세트였기 때문에 감당해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더욱이 이렇게 큰 세트 안에서 엔비언트 조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은 일반 조명환경의 촬영 때보다 배 이상 걸렸다.
이렇게 힘드니까 알면서도 실험을 안 하는 것이군 하고 생각했다.
나도 순간적으로 ‘에이 확 무시해버리고 그냥 일반 조명으로 가버릴까? ’ 하고 되뇌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꿈에 장화, 홍련 두 자매가 원귀가 되어 나타났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니? 우리의 원을 풀어주는 영화를 만든다면서 그 정도도 안 하려고 그런 거야? ”
# 2002. 12. 24. 41회차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다들 섭섭해하면서 촬영을 함. 아침에 세트장 안에 큰 크리스마스 트리와 빨랫줄에 제작부에서 스탭들을 위해 준비한 양말 선물들이 카드와 함께 걸려 있었음.
오늘은 다른 날보다 O.K를 빨리 불렀다. 모처럼 신 누끼도 찍고 3신을 소화했다.
그러나, 무현 욕실장면을 찍을 때 호스가 잘 안 맞고 수증기를 만들어내는 부분 때문에 촬영이 새벽에 끝남.
제기랄, 그럼 그렇지.
# 2003. 01. 12∼13
에필로그 세트분량 촬영을 시작함.
염정아. 임수정. 문근영이 다른 헤어스타일로 나타나 촬영을 함.
뒤에 들어오는 촬영팀이 거의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라 며칠째 강행군을 해야 했다.
그래도 단 며칠이라도 봐준 그 회사가 고맙다.
# 2003.01.15. 56회차
세트 마지막이어서 다들 수십 시간 잠을 못 자고 촬영을 강행했다.
역시 이렇게 쫓기듯 찍은 장면들이 좋게 나올 리 없었다.
그래도 하는 수 없었다. 철수할 수밖에….
마지막 장면에서 소수정예의 잠없는 스탭들이 남아 끝까지 촬영을 함.
몰려오는 잠을 이겨내는 방법은 틈날 때 눈을 감고 있는 방법밖에 없었다.
“감독님, 일어나세요.”
세트 바라시하는 데도 이틀이 걸렸다.
영화를 잘못 찍고 두 다리를 쭉 펴고 자기란 쉽지 않다.
나는 오늘도 다리를 오므리고 잔다.
# 2003. 01.27. 60회차
수연이가 생리하는 장면 촬영.
어린아이여서, 피묻은 팬티가 나오는 장면이어서 남자스탭들의 출입을 삼가고 촬영기사와 감독님을 제하고 모두 여자스탭들이 들어가 진행함.
문근영은 이렇게 여자스탭들만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 너무 멋있다고 한껏 들떴고, 촬영감독은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눈감고 찍었다고 했다(이동컷인데…).
나도 눈감고 모니터를 봤다는 말은 차마 못했다.
# 2003. 01.29. 62회차.
수미 방 세트 마지막.
에필로그 장면을 촬영하고 엄마귀신이 나오는 장면을 촬영.
와이어를 설치하고 천장을 막고 붙이고 하느라 세트팀이 고생함.
세트팀 오 차장님이 명언을 남김. “뜯어요? 환장하겄구먼.”
“붙여요? 환장하겠네.”
여러 번의 NG 끝에 20번 만에 귀신걸음 성공. 여전히 다음날 낮까지 촬영함.
# 2003. 02. 04. 63회차
정신병원 촬영. 꽤 고급스러운 정신병원으로 모든 스탭들이 조심조심하면서 촬영을 함.
병원에 있는 수미를 만나러온 은주와 무현의 장면을 촬영.
정신병원이어서 다른 소품이나 물건들이 없어 모두들 정말 세트 같다는 말을 했다.
너무 세트촬영에 길들어 있어서, 촬영감독이 벽을 ‘댕강’할 수 없냐는 말이 나옴.
병원촬영을 하다, 예민한 환자들의 항의 때문에 복도신을 찍지 못하고 철수.
환자 왈, 스탭들 중 누군가가 자기 보고 미쳤다고 했다고 한다.
확인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 환자의 말을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음….”
# 2003. 02.14. 70회차
며칠 동안 소리지르고 많이 울어서 그런지 계속 감정이 나오지 않아 수정이와 근영이가 많이 힘들어 함.
둘다 거의 탈진상태. 안쓰러웠지만 여기서 약해지면 오히려 나중에 수정이와 근영이한테 원망을 들을 것 같았다.
좋은 장면이 나올 때까지 더할 수밖에.
TV촬영과 영화촬영을 동행해서 잠을 거의 못 잔 근영은 최후의 발악을 하듯, 현장에서 더 활발하게 뛰어다니고 떠들다가 촬영이 끝나자마자 쓰러져 잠.
그런 근영이를 보고 웃는 수정이를 보며 진짜 자매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 2003. 03. 02. 마지막 촬영
촬영을 끝내고 그러니까 마지막 컷을 부르고 나오면서 스탭들과 하나씩 악수하고 포옹했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모두들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눈이 온다.
# 2003. 04
지나던 길이라며 편집실에 들른 홍상수 감독님이 편집된 것 좀 보자며 들어오기에 등을 떠밀어냈다. 개봉하기도 전에 망신당하고 싶지 않았다.
편집을 하도 붙였다 떼었다 하니까 고임표 편집기사가 이 컷은 다시 붙이거나 떼지 않겠다고 서약함이라고 아예 신 제목을 붙여 아비드편집기에다 입력했다.
# 2003. 05
이병우 음악감독 스튜디어에서 음악작업 중.
내가 하도 이 음악 만들어 달랬다가 저 음악 만들어 달랬다가 하니까 이병우 음악감과 피아니스트 신이경이 건반 자리를 내주며 한번 쳐봐 한다.
하라면 못할지 알고? 하면서 건반을 마구 눌렀다.
소리에 감동먹고 있는데 둘이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라이브톤에서 믹싱 중.
소리를 하도 이것 넣었다 저것 넣었다 하니까 라이브톤 최태영 기사가 아예 여러 소리를 만들어놓았다.
편집이 늦어진데다 개봉이 예상보다 일주일 정도 일찍 잡히는 바람에 사운드작업이 중요한 이 영화의 후반 일정이 너무 빡빡해졌다.
이 영화가 정말 무섭고 아름답고 슬픈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정말 두 자매의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순간의 참혹한 마음의 공포를
그려낼 수 있을까?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정말 상상력이 진정성이란 게 가능한 걸까?
오 하느님 제발 저에게 일주일만 시간을 더 주세요.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