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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폰 부스>
2003-06-05

뉴욕에 하나남은 공중전화 부스, 전화를 끊으면 죽는다

휴대전화가 넘치는 요즘, 대로변에 유리박스를 친 공중전화 부스는 뉴욕에 한 개 남아 있다.(영화에서 그렇게 설명한다.) 한 남자가 그 전화로 여자를 유혹한다. 의도대로 잘 안돼 짜증내며 수화기를 내려놓은 직후에 공중전화에서 벨이 울린다. 무심결에 잡아든 수화기 안에서 한 남자가 말한다. 전화를 끊으면 너는 죽는다고. 전화기 속에서 장총에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건물 창가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는 이 남자가 어디 있는지, 전화 부스를 둘러싼 고층건물들은 너무도 많다.

공중전화 부스에 갇혀 꼼짝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낸 발상은 신선하다. 전화 속 남자가 진짜로 총을 쏴 부스 근처의 한 사람을 죽이자 부스 속 남자가 범인으로 몰린다. 경찰이 몰려오고 도로는 아수라장이 된다. 남자는 도로뿐 아니라 즐비한 고층건물 안의 무수한 시선에 노출되지만 유리 방음벽 하나로 밖과의 소통이 차단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영화의 시간은 사건 진행과 같은 실시간대로 흐른다. 그 80분 동안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전화 속 남자는 부스 속 남자를 마음대로 가지고 논다. 아내에게 전화해 다른 여자를 유혹한 사실을 고백하라고 한다. 부정한 현대인들은 응징받아 마땅하다며 설교도 늘어놓는다. 그냥 사이코인 줄 알았더니 나름의 사상을 가진 지능범이다. 그럼 그 사상이 뭐고, 동기는 뭘까. 영화는 거기에 답할 생각이 없다. 시작부터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마이클 무어는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미국의 보수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공포라고 말했다. 어떤 낯선 이가, 유색인종이, 마약중독자가 자기 가족을, 재산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공포. <폰 부스>는 무장해제된 이 소시민을 조롱하면서 그 공포를 부추긴다. 범죄가 익명화하는 대도시에서 무력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초상화쯤으로 외피를 두르지만, 그 안엔 아무 것도 없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리쿠르트>로 최근 뜨고 있는 콜린 파렐이 부스 안 남자를, 키퍼 서덜랜드가 전화 속 남자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조엘 슈마허 감독. 13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사진 20세기 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