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도사님? 백운학이라는 감독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어느 신문에서 운세를 점쳐주는 도인을 떠올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짧게 자른 머리와 수염, 그리고 온화한 웃음 또한 그를 어딘가 신통한 구석이 있는 인물로 느끼게 한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 데뷔작 <튜브>를 만든 신인 백운학 감독은, 그러나 다소 지쳐 보였다. 그건 단지 총 3년이라는 제작기간이나 영화규모가 이른바 ‘블록버스터’ 수준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한국 최초의 지하철 액션을 만들기 위해 온갖 분투를 해야 했고, 투자사인 튜브엔터테인먼트가 지난해 여러 위기를 겪으면서 스스로도 속앓이를 했으며, 50억원이 넘는 제작비에 대한 부담도 짊어지는 등 각종 긴장과 스트레스가 심한 탓이리라.
그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잘하려 했는데 썩 잘되진 않은 것 같다”고 먼저 말을 꺼낸 것도 기자보다 ‘선수’를 치기 위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영화를 깎아내림으로써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튜브>에 관해 가장 비판적인 평론가보다도 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봄으로써 한동안 자신을 지배했던 영화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영화가 감독의 자식이라면, 그는 강한 아버지처럼 영화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애써 애정을 내비치지 않으려 함에도 간간이 드러나는 끈적한 무언가까지 지울 순 없었을 거다. <튜브>에 관한 그의 이야기 속에 이상한 물기와 흥분이 묻어 있었던 건 그 탓이리라.
워낙 힘들여 만든 영화다 보니 개봉을 앞둔 심정이 남다를 것 같다. 홀가분하긴 한데 후회가 많이 된다. 기자시사회와 일반시사회 때 극장 뒤쪽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데 식은땀이 줄줄 흐르더라. 편집, 음악의 리듬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 특히 인물을 잘 못 살렸다는 점이 쪽팔린다. 냉정하게 보자면 부끄러움이 더 크다.
그래도 자부할 만한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프로젝트를 마무리지었다는 것 정도랄까. 관객이 큰 부담없이 와서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은 아닌 것 같다. 한 가지 더 있다면 우리 영화는 기존 블록버스터영화와 달리 제작비가 고스란히 화면 안으로 옮겨온 것 같지 않나.
애초 구상할 때와 비교하면 몇%나 이뤄낸 것 같나. 몇%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딴생각하지 않고 확실한 오락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대신 한 가지, 즉 인물만큼은 확실하게 살리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이를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지만 의도만 살아 있지 보는 이들에게 감정으로 확 다가오는 것 같진 않다. 껍질만 남았다. 그 점이 가장 아쉽다. 그림은 웬만큼 따라줬다고 보는데 말이다.
다른 요소보다 신경을 썼는데도 캐릭터에 대한 표현이 잘 안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물을 살아 있게 하기 위해 나름대로 연구하고 심사숙고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에 들어가고 보니 특수촬영이나 앵글 같은 것을 어떻게 할지는 방안이 제대로 서 있는데 정작 인물을 어떻게 살아 있게 할지에 관해서는 신경을 못 썼던 거다. 캐릭터들을 너무 컨벤션으로 대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아쉬웠던 건 액션의 스피드를 드라마와 캐릭터가 쫓아오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판단을 잘못한 거다. 영화를 정말 내 맘대로 찍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이렇게 해야 했는데…. 결국 공력의 차이 아니겠나. <살인의 추억>을 보고 술을 많이 먹었다. 상업이냐 예술이냐를 이분법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내 안에서 하나로 녹여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유연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락영화를 지향했다고 했는데, 혹시 이 결심이 흔들린 적은 없나. 당연히 흔들렸다. 할리우드의 공식을 연구하면서 영화를 구성했는데, 그래도 내 고유의 무언가를 담아야 하지 않냐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인물의 내면을 한두 장면만으로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왜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맘보를 추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아비의 내면이 한번에, 그리고 복합적으로 들어오지 않냐. 나도 장도준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한두컷 보여주기 위해서 김석훈에게 춤을 추게 시켰다. 그런데 밤을 새워가면서 고생고생 찍었는데, 안 되겠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김석훈이 잘 못했다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느낌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 그때 촬영 끝나고서 석훈이가 그러더라. 감독님이 전달하려는 것을 모르겠다고. 배우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게 참 어려운 것 같더라.
캐스팅이 어려웠다고 들었다. 신인감독에다 신생 제작사, 그리고 검증이 안 된 블록버스터영화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한때 한석규와 논의를 벌인 적이 있다. 그에게 맞게 시나리오도 고치고 그랬는데, 결국 사정상 못하게 됐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한석규에게 제시한 시나리오가 별로 안 좋았던 것 같다. 좀더 정성을 들여 잘 만들었더라면…. 어쨌건 캐스팅 때문에 1년 가까이 우왕좌왕했다. 자본은 자본대로 캐스팅은 캐스팅대로 나뉘어 전문화된 상태로 진행이 되고, 크리에이티브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거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됐다. 시스템이 좀더 조직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김석훈, 박상민, 배두나 그리고 조연까지 모두 훌륭했다. 문제는 나였겠지. 나는 애초 이런 영화에서는 연기 또한 ‘블록 끼우기’라고 생각했다. 연기를 정해놓은 그릇에 담아서 밀고 나가면 된다고. 그런데 배우들이 원래 욕심이 많고 열정이 넘치지 않나. 항상 그릇이 넘치더라. 그래서 그걸 다 깎아냈다. 그러다보니 두나같이 감성이 풍부한 배우는 투덜거리기도 했다. 감정이 오려면 호흡이 더 길어야 한다면서. 석훈이도 그러더라. 작업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렇게 그릇에 딱 맞춰가겠다고 얘기는 했지만, 어찌됐건 배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투자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내가 원래 화 안 내고 참는 성격이다. 그런데 정말 화가 많이 난 적이 있다.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을 해야 하는데, 튜브엔터테인먼트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미뤄졌다. CG를 위한 하드디스크가 꽉 차서 사야 하는데도 못 살 정도였으니까. 그러다가 투자자가 CJ로 바뀐다면서 갑자기 편집본을 보자고 하고…. 일이 되게 해야 하는데 꼬이기만 하더라. 나중엔 하게 될 때 하고 말게 되면 말자, 이렇게 속편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대구 지하철 참사로 개봉이 미뤄지기까지 했으니…. 처음엔 황당했다. 그런데 희생자들을 보니 남 얘기 같지 않았다. 나도 중학교 다니는 딸 아이와 휴대폰으로 자주 통화하는데 방송에서, 지하철에서 죽은 순간에도 휴대폰으로 부모와 통화한 사람의 얘기가 나오더라. 자연스럽게 딸아이가 대입돼 눈물이 나왔다. 까짓거 영화 그게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그때 개봉하면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안타깝지만 개봉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건 총기 액션장면은 <쉬리>보다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다. 지하철 액션 또한 진일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들은 어렵게 생각하던데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아무래도 <쉬리>에서 조감독이었고, 당시 스탭들과 호흡을 맞추다 보니 좀더 쉽게 찍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카메라를 이렇게 하면 파워가 있어 보이겠다, 이런 식의 노하우가 있었다.
아무래도 그런 노하우를 살리려면 이런 액션영화쪽을 계속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스스로 봐도 관심이 많이 가는 게 이런 재미있는 영화쪽이다. 꾸준하게 그쪽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인데, 이른바 좋은 영화도 만들고 싶은 게 사실이다. 결국 뭘 만들든지 영화 안에 한 장면이라도 내가 만족할 부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튜브>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모든 장면이 그렇다. 완성도가 아니라 다른 점 때문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김포공항에서 촬영하던 마지막날인데, 그날까지 공항 액션을 다 못 찍으면 다신 찍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신이 없고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카메라가 6대 동원되고 스탭도 100명 정도 나왔으니까. 해가 서서히 떨어져 다들 분주한데 한 스탭이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앰뷸런스가 오고, 스탭들이 우왕좌왕했다. 나는 힘이 빠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동시녹음을 하는 이병하 기사님이 다가와서 “백 감독, 빨리 찍어야 돼”라고 하시더라. 고개를 들었는데, 촬영, 무술, 특수효과팀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흩어지더니 자기 일을 정확하게 챙기는 거였다. 순식간에 준비가 끝나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영화현장이란 게 정말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다. 그래선지 그 장면을 보는데 괜히 눈물이 나고 하더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란 공항 앞에서 경찰차가 한 바퀴 구른 뒤 충돌하는 신이다.
촬영기간 9개월에, 120회 넘게 찍었다. 규모도 보통이 아니고.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내가 겉보기엔 깡말랐지만 웬만해선 감기도 안 걸리는 건강한 체질이다. 그런데 힘들긴 힘들었나 보다. 촬영 막판, 현장에서 쓰러졌는데 병원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링거를 꽂고 누워 있더라.
영화이력이 궁금하다. 집이 못살아 학비는 면제지만 해군에서 5년 의무복무해야 하는 금오공고를 나왔다.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하고 5년 동안 군에 있다 제대한 뒤 스물여섯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영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졸업을 했는데 당시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처지라 광고대행사에 들어가 프로듀서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여기에 더 있으면 영영 영화를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이정국 감독의 <고추이야기> 프로젝트에 가담했다. 이 영화가 엎어진 뒤 다시 이정국 감독의 <채널69>에서 조감독을 했고, 그뒤에 평소 알고 지내던 강제규 감독의 <쉬리>에 참여하게 됐다.
<튜브>는 국내에서 개봉하기도 전에 칸에서 200만달러 넘는 수출 계약을 맺었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나도 제작사의 배려로 칸에 가서 5∼6일 정도 체류하면서 바이어를 상대로 한 시사회에 들어가기도 했다. 영화제나 마켓이나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큰 자극을 받았다. 세계영화의 수준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하는 사람이라면 이 분위기를 꼭 체험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