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면 세계 곳곳에서 수천명의 인간 군상이 프랑스 남부 칸 해변으로 몰려온다. 한국의 영화인들도 줄잡아 300여명이 항상 칸영화제를 찾는다. 그래서 이 시기면 충무로의 거리는 잠시 휴가를 즐기듯 공백상태에 빠진다. 스무편 남짓한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들은 최고의 귀족적 예우를 받으며, 붉은 카펫을 밟고 스크린 무대에 오른다. 열광적인 환호와 때로는 야유를 보내며, 너나 할 것 없이 영화축제를 즐기는 듯하다. 밤마다 각양각색의 파티가 열리고, 영화제 단골 손님들은 모두가 친구인 양 웃고 떠들며 와인과 맥주에 젖어든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영화제를 찾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이런 풍경에 젖어들면 자기도 모르게 영화적 판타지를 동경하게 된다. 영화축제는 칸영화제말고도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영화가 해외영화제에 진출하면 영진위에서 포상금을 주는 제도가 있다. 영진위의 포상금 등급 기준에 따른 주요 영화제는 대강 이렇다. A급 영화제로 칸, 베를린, 베니스가 있고, B급 영화제로 카를로비 바리, 로카르노, 산세바스찬, 로테르담, 선댄스 등 17군데가 있으며, C급 영화제로 홍콩, 런던, 하와이, 시체스 등 20여 군데가 있다. 이 외에도 단편,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수십개의 영화제가 있다. 한국영화는 그동안 꾸준히 성장하면서 주요 영화제에 대부분 진출해 다양한 수상경력을 쌓아오고 있다. 지난해 임권택, 이창동 감독의 감독상 수상이 하이라이트다. 그리고 영화제 마켓에서도 한국영화가 꾸준히 팔리는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이 정도면 한국영화도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들과 나란히 경쟁하는 대열에 있다고 자부할 수 있으며, 앞으로 더 좋은 성과들을 기대할 수 있겠다. 여기서 곰곰이 짚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다. 도대체 우리는 영화제를 통해서 무엇을 즐기고 얻을 수 있는가.
영화제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감독이다. 배우와 프로듀서는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 위대한 걸작이나 영화적으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실험적인 작품을 만날 때, 모두들 감독을 향해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기꺼이 들러리로서 함께 기뻐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스타감독을 통해 영화는 한 단계 발전하며, 관객의 사랑을 이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스타감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칸영화제 5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10명의 프로듀서를 선정하여, 그들이 만든 작품 중 칸에서 수상한 영화들을 상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각 프로듀서들의 프로필을 보면서 느낀 바가 있었다. 대부분 한 감독과 5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었고, 졸작과 걸작이 섞여서 오늘날 모두에게 회자되는 유명한 영화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되는 놈을 끝까지 밀어줘봐야 하는 것이다. 속된 말로 영화에 미친 건달이 아니고서야 도대체 할 수 없는 짓거리다. 그래서 프로듀서는 그놈의 감독 때문에 성공하기도 하고, 파산하기도 하나보다.
한국에는 임권택, 이창동 감독의 뒤를 이를 젊은 신예감독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들과 꾸준히 생사고락을 함께할 프로듀서와 투자자들이 부족하다. 한번은 만들지만 두번 이상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많은 좋은 감독들이 한편의 영화를 만들고 나서, 이후 상업영화의 덫에 걸려 어디에 빌붙어야 할지 신음하다가 수년을 순식간에 흘려보낸다. 어쩌다 한편의 작품을 가지고 영화제에 가보지만 봄날에 소풍 다녀오듯 한번의 나들이에 만족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국제적으로 내세울 만한 스타감독들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스타감독을 만들어야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이 돈이 되는 길이며, 한국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스타감독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는 영화제의 성격을 뜯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어떤 영화제든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철저하게 치장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상업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칸영화제가 다른 영화제에 비해 독보적인 것은 이런 상업적인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며, 영화를 사고 파는 마켓의 크기로 그것을 가늠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칸을 찾는 것은 거기에 빌붙어서 무언가 먹을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같이 한량으로 보이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뚝심과 배짱이 두둑한 진정한 건달들이다. 이처럼 영화제는 고상한 예술가들의 축제가 아니라 꿈과 판타지를 즐길 줄 아는 건달들의 놀이터다. 이승재/ LJ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