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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의 위대한 데뷔,<결투자들> SE
2003-06-04

“결투자는 만족을 원한다. 그는 명예에 굶주려 있다. 이 영화는 괴상한 욕망을 다루는 실화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황제가 된 그해에 이야기는 시작한다.” 스트라스부르그, 1800년. 시장의 조카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결투를 신청한 페로 중위는 체포된다. 체포 명령을 전달하러 온 뒤베르 중위에게 자신을 모욕했다며 결투를 신청한 페로 중위, 그렇게 둘의 악연은 시작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나파르트가 유럽을 휩쓸던 시절 둘은 함께 전장을 누비며 몇년에 한번씩 마주칠 때마다 거의 숙명처럼 결투를 벌이게 된다. 그것은 러시아를 거쳐 1816년 파리로까지 이어진다.

조셉 콘라드의 단편 <결투>는 그의 또 다른 작품들처럼 그렇게 정복에 탐닉하는 제국주의적 욕망에 관한 메타적 글쓰기이다. 이제 콘라드의 <결투>를 영화화한 <결투자들>에서 단 한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 부재함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지어버린다. 평민에서 황제까지, 보나파르트의 끊임없는 상승에의 욕망은 유럽 전역으로 뻗어나가며 타국을 정벌하는 데 이른다. 황제에게 자신을 투영시키는 평민 출신 페로와 황제를 경멸하는 귀족 출신 뒤베르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폴레옹파와 왕정복고파 사이의 차이점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향한 끝없는 욕망은 마찬가지가 아닌가(“개인간의 전투보다는 국가간의 전투가 우선이지”). 에드거 앨런 포의 유명한 단편 <윌리엄 윌슨>처럼, 상징적 쌍둥이인 뒤베르와 페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코 서로를 완전히 넘어서지 못한 채 살아간다. 상대방을 죽이기 전까지, 그 둘은 결코 평온해질 수 없다(“나는 지금까지 네 뜻에 따라주었으니, 이젠 네가 내 뜻을 따라줄 차례야.”).

15년간 1천편이 넘는 광고를 찍으며 ‘단편 실습’을 충분히 마쳤다고 느낀 리들리 스콧이 ‘나 자신을 걸고 완성했다’고 고백한 야심적인 데뷔작 <결투자들>은 분명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을 의식하고 만들어졌다. 대부분 일광과 촛불 빛에 의존하고 있는 <결투자들>의 조명은, <배리 린든>이 와토나 게인즈버러의 그림을 참조하여 만들어졌듯이, 영화 전체에 17세기부터 19세기 화가들의 기운을 조심스럽게 불어넣는다. 그러니까 스콧은 자신이 흠모했던 고전 회화의 구도를 그대로 차용함으로써 철저하게 영화 속 시대에 걸맞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결투자들>을 완성한 것이다(이를테면 라스트신은 보나파르트의 어떤 초상화에서 그대로 빌려온 구도이다. 스콧의 또 다른 사극 <글래디에이터>가 ‘현대적인’ 역사물이었음을 떠올려보면 흥미로운 차이점이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역사극에는 상당히 적은 액수인 90만달러라는 제작비 때문에 감독은 세트를 새로 지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프랑스 시골을 샅샅이 뒤져서 찾아낸 고요한 공간들과 호텔 식당과 계단, 스키장 등을 최대한 활용해야만 했다고 고백한다. “결핍은 발명의 어머니죠.” 이 작품의 완성도 높은 미감을 떠올리면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갖가지 노력과 우연의 절묘한 배합으로 완성되었으며 그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까지 수상하였으나, 일반 관객에게 보여질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던 이 안타까운 데뷔작에 대한 감독의 자긍심과 깊은 애정은 이번 DVD 제품에서 충분히 보상받는 느낌이다. 70년대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아름답게 복원된 이미지와 약간은 단조로운 내러티브를 충분히 보완하는 ‘대화로서의 결투’에 정신없이 몰두하다보면, 우리 시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리는 리들리 스콧의 명성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다. 당신의 멋진 데뷔작을 위하여, 비바, 미스터 스콧! 김용언 mayham@empal.com

Duellists Special Edition, 1977년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키스 캐러딘, 하비 카이틀, 알버트 피니, 에드워드 폭스화면포맷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1.85:1, NTSC오디오 돌비디지털 5.1 | 출시사 파라마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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