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Lights, 1931년, 감독 출연 찰리 채플린EBS 6월8일(일) 낮 2시
<시티 라이트>를 촬영하던 당시 채플린은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여성이 떠돌이 채플린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다. 이 여성은 거리에서 꽃을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 그런데 채플린을 백만장자로 착각해야만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다. 자, 어떻게 이 장면을 찍을까? 시각장애인 여성이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란? 같은 장면을 수십번 되풀이해서 찍던 채플린은 한 가지 묘책을 발견했다. 그것은 소리의 응용이었다. 거리를 걷던 떠돌이는 정지한 자동차를 통과해 문을 닫은 뒤 다시 땅에 발을 딛는다. 그러니까 문 닫히는 소리를 듣고 여성이 채플린을 백만장자인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일거리가 없어 도시를 방황하는 떠돌이는 꽃파는 아가씨를 만난다. 아가씨는 앞을 볼 수 없다. 그녀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떠돌이는 동전을 털어서 꽃을 사게 된다. 그리고 눈을 수술할 비용을 마련해주겠노라 약속한다. 한 부자와 알게 된 떠돌이는 그와 가깝게 지내면서 친구처럼 대접받는다. 그런데 이 부자는 술이 취했을 때만 떠돌이를 친구로 대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다. 부자에게서 돈을 얻은 떠돌이는 꽃파는 아가씨와의 약속을 지킨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할리우드영화는 1920년대말에 유성영화 시대를 맞이했다. 바야흐로 토키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채플린은 여기에 동승하길 거부했다. 그는 1931년작인 <시티 라이트>를 변함없이 무성영화로 만든 것이다. 자신의 무성영화에 대한 일관된 지지에 대해 채플린은 “유성영화는 배우 동작에 스민 리듬감을 모두 없애버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사운드의 모든 기능을 부정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연주할 때 떠돌이 채플린이 딸꾹질을 하면서 연주를 방해하고 권투시합 도중 시합이 엉망진창이 되는 장면 등 영화는 사운드의 교과서적 활용에 충실하다. 앞서 언급했던 떠돌이와 꽃파는 아가씨의 첫 만남 시퀀스 역시 간단한 아이디어를 통해 영화사에 남을 만한, 즉 유머가 있으면서 아릿한 슬픔이 배어 있는 명장면이 되었다.
<시티 라이트>엔 채플린의 블랙유머가 스며 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채플린은 정치인들의 행사를 슬그머니 비틀어 조롱한다. 그리고 재력가에 관한 에피소드 역시 위트있다. 어느 부자가 술에 취하면 떠돌이를 ‘친구’로, 멀쩡한 정신일 때는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자본주의식 이해관계에 관한 의미심장한 은유다. 무엇보다 <시티 라이트>는 사랑에 관한 은유가 풍부하다. 꽃파는 아가씨는 떠돌이의 진짜 정체를 알지 못하지만, 심지어 외모도 모르지만 그를 깊이 사랑한다. 어떻게 가능하지?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우리는 <어린 왕자>의 여우가 들려줬던 이야기를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