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출연 니콜라이 체르카소프 장르 서사극 (씨네랑)
혁명은 일으키기도 어렵고 지속시키기도 어려우며, 승리로 이끌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나 진정 힘든 문제들은 승리 그 이후에야 닥쳐오곤 한다. 1917년, 민중적 투쟁을 통해 혁명을 완성한 러시아는 그러한 역사적 격변과 혼란을 체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사의 마르크스라 불리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역시 자기 조국의 험난함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비운의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이른바 ‘변증법적 몽타주’를 통해 영화사상 가장 중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영화문법들을 창안해냈던 에이젠슈테인은 자신의 초기작 <파업>과 <전함 포템킨>을 통해 레닌이 강조했던 혁명영화의 가능성을 직접 실천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미 소련은 물론이고 유럽대륙에 거장으로서의 자신의 면모를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질곡이 찾아왔다. 권좌에 오른 스탈린은 혁명과 반혁명의 경계에 서 있었으며, 이 시기 채택된 예술강령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에이젠슈테인을 교조적인 형식주의자라는 비판의 멍에를 지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상처는 에이젠슈테인을 연출이 아닌 연구작업과 미국 등의 국가로 배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조국으로 돌아온 에이젠슈테인은 37년, 13세기 러시아의 영웅을 그린 영화 <알렉산더 네프스키>를 통해 재평가받기 시작했으며 그 여세를 몰아 44년, 3부작으로 기획된 <폭군이반I>을 완성한다.
모스크바 대공 이반 4세는 왕위에 오른 뒤 분열된 러시아를 통일하고 권력을 재편하는 등의 개혁을 단행한다. 그러나 그를 견제하는 귀족들의 반역과 시해음모에 끊임없이 계속된다. 영화 <폭군이반I>은 16세기 통일러시아를 이룩한 이반대제의 변혁적인 역사를 다시 기술하는 웅장한 서사극이다. 때문에 이것은 스탈린의 정치적 신화학과 맞물리면서 기립박수를 받는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2년 뒤 발표한 <폭군이반II>는 권력의 정점에 선 이반이 자신의 야망과 광기에 휘말리는 심리적 과정과 폭력을 묘사하고 있다. 마치 스탈린의 절대권력을 은유하고 비판하는 듯한 이 작품은 결국 상영금지되는 운명에 처하였고, 이후 에이젠슈테인은 더이상 작품세계를 펼 수 없게 되었다. 압도하는 이미지들과 웅장한 연출력은 1, 2편 모두에서 뛰어나지만, 특히 2편의 전체적인 미장센과 몽타주는 권력과 광기에 사로잡힌 이반대제의 내면세계를 상징하듯 전개된다. 무성영화처럼 과장된 배우들의 몸짓과 클로즈업된 얼굴 이미지들은 물론이고 조명을 통해 강조되는 빛과 그림자의 운율은 이반의 심리적 내면세계의 극단화된 공간으로 형상화한다. 그래서 이반이 자신의 왕좌를 넘보는 사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장면에서는 아예 광기의 붉은색과 공포의 푸른색 색체가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기도 한다. <이반대제II>는 감독의 영화이력을 마감시킨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후 평자들에 의해 에이젠슈테인 최고의 형식미학이 완성된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 되었다.
정지연/ 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