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3일 영국의 밀턴 케인즈에는 인터넷 예매시 티켓을 20펜스(약 400원)에 살 수 있는 멀티플렉스가 문을 열었다. 10개 스크린에 2천석을 구비한, 이 멀티플렉스의 이름은 이지시네마(EasyCinema)다. 인터넷 예약을 기본으로 모든 거품을 뺀, 싼값으로 최저비용의 항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 이지젯(EasyJet)을 세운, 그리스의 도전적인 사업가 스텔리오스 하지 이오아누가 고안한 새로운 이지 브랜드 사업이다.
이지시네마의 운영은 기본적으로, 유럽지역에서 항공사업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놓다시피한 혁명적인 성공을 거둔, 이지젯의 기본 사업 원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먼저 모든 티켓은 인터넷에서 예매한다. 극장에는 박스오피스나 검표원이 없고 인터넷에서 예매한 티켓을 프린트해서 극장에 들어갈 때 거기에 찍혀나온 바코드를 턴스틸이 읽도록 하면 된다. 시간과 요일에 따라 티켓의 가격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에서 예매를 하는 시점에 따라서도 가격이 다르다. 가장 싼 티켓은 20펜스, 가장 비싼 티켓은 5파운드(참고로 영국의 멀티플렉스 티켓 가격은 보통 5파운드에서 10파운드 사이다). 일찍 예매를 할수록 가격은 내려간다. 같은 시간에 같은 영화를 보고 있더라도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내가 티켓을 산 가격이 최대 4파운드80펜스(약 9600원)까지 차이날 수 있다.
극장에는 턴스틸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원이 있고, 집에서 인터넷을 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 티켓 예매를 위해 이용가능한 인터넷 터미널들이 있다. 이 극장에는 박스오피스뿐만 아니라 간단한 스낵이나 음료수를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구내매점이 없다. 팝콘이든 콜라든 영화를 보며 먹고 싶다면 본인이 준비해가야 한다. 단돈 400원에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그것도 내가 먹고 싶은 스낵을 가지고 가서 영화를 볼 수 있다니…. 듣기만 해도 환상적인 이 이지시네마의 사업구상은, 그러나, 몇 가지 현실적인 난관이 있다.
관객이 몇명 들든 정해진 횟수만큼 영화를 상영하고, 보통 상영 첫쨋주 둘쨋주의 수익에서 자신들의 몫을 챙겨가는 방식으로 극장들과 거래해오던 기존의 영화배급사들이 따끈따끈한 블록버스터영화를, 20펜스의 가격으로 티켓을 판매하는 이지시네마에 선뜻 내줄 리 만무한 것. 더군다나 엄청난 물량을 들여 만든 자신들의 블록버스터가 단지 20펜스의 가치밖에 없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제작사들의 부정적인 시각과 우려 역시 만만치 않은 장애요소다. 지난 5월23일 첫 번째 이지시네마의 라인업은 이미 한물간 <투 윅스 노티스> <불렛프루프 몽크> 등으로 채워졌다. 이 난관을 뚫기 위해 스텔리오스는 배급사들의 담합에 의한 불공정 거래 사례를 놓고 법정투쟁을 준비 중이다. 이지시네마가 최신의 블록버스터 필름들을 확보하지 못하고 조금 시기가 지난 영화들을 계속해서 상영할 경우, 이번에는 비디오, DVD 렌털/판매시장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집에서 비디오, 혹은 DVD로 볼 수 있는데 왜 굳이 극장까지 가서 영화를 보겠는가?).
이지그룹의 대변인은 평균 1파운드50펜스(약 3천원)를 내는 관객 1만명 정도만 동원하면 이지시네마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예측했다. 첫날인 5월23일날 팔린 좌석 수는 총 2400석. 사업에 관련된 모든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고 철저히 수요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방식을 통해서 최대한 싼값에 수요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지의 사업방침이 과연 영화 배급업계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을지 자못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