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한 화장술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반성문이란 걸 써봤다. 졸업하기 전에 배운 담배 때문이었다. 초범인 점을 감안해서 반성문을 써오면 봐주겠다고 해서 열심히 썼다. 써본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반성문은 일정한 틀이 있다. 먼저 비행 사실을 6하 원칙에 의거해 적시한 다음, 그것이 얼마나 나쁜 짓인가 응징하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는데, 서약 준수의 구체적 방법까지 제시하면 신뢰도가 올라간다. 나는 이 논법에 따라 반성문을 작성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치명적인 거짓말 한 대목. “호기심을 참지 못해 이날 처음으로 딱 한대 피웠다.” 더이상의 심문은 없었고, 나머지 죄과는 반성의 포즈 속에 파묻혔다.
살면서 더러 자진해서 반성문을 쓰고 싶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제출처가 마땅찮았다. 성직자, 선생님, 경찰 등과 같은 사회적 대리인에게 ‘습니다’체로 제출해야 하는 반성문을 쓴다고 생각하면 나는 ‘딱 한대’의 유혹을 떨쳐버릴 자신이 없다. 그러니 그런 반성문은 내게 진정으로 반성해야 할 일을 만드는 비행에 해당한다.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고해의 대상은 제도와 멀찌감치 떨어져서 사람의 선의를 불러일으키는 개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고해하고 싶다는 것은 잘못에 대한 자발적 응징의 대가로 자기 안의 선의를 끄집어내고 싶다는 거다. 선의는 남에게 뭔가 주고 싶은 의지이다. 나는 사람이 아닌 그 무엇이 선의를 온전하게 받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고해는 절박한 사랑의 서론이다. 개인을 향하든 신을 향하든 대상없는 사랑을 상상하지 못하듯, 나는 대상없는 고해를 신뢰하지 못한다.
종종 대상없는 고해와 마주칠 때가 있다. 사과하고 사죄해야 할 구체적 대상이 없는데도 습관처럼 고해의 문체를 사용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럴 경우 나는 의구심이 앞선다. 누군가 봐주기를 기대하고 써놓은 일기는 언제나 또 다른 자기 현시의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남에게 주기 위한 선의가 아닌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선의를 목적하는 고해는 반성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값싼 구애를 욕망한다. 혼자 반성문 쓰는 광경을 훔쳐보게 만드는 연극의 독백은 그리하여 처음부터 관객의 반응을 예측하고 출발하는 효과적인 수사법이 될 수 있다.
<어댑테이션>은 고해도 잘만 주무르면 광고 카피로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영화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 영화는 <난초도둑>이란 책을 각색하는 작업을 맡은 찰리 카우프만이 끙끙거리며 시나리오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축으로 얘기가 전개된다. 영화의 상당 부분은 할리우드의 장르적 관습을 경멸하며 색다른 얘기를 만들어야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독백으로 채워진다. 이 독백은 겉으로 예술가연하면서 고상을 떠는 자신의 내면이 사실은 소심과 비겁과 잔욕심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작가는 나중에 결국 자신이 경멸해 마지않던 쌍둥이 동생의 할리우드식 작법에 머리를 숙이는 진지한 학승의 자세로 돌변한다. 이 과정에서 내 귀를 사로잡은 목소리는 딱 두 가지다. 첫째, “나 할리우드에 적응하려고 무지 고뇌했어”. 둘째, “ 할리우드 알고보면 성인의 성숙함이 있어”. 이 두 목소리를 적절하게 섞어서 알아듣기 어려운 잡음을 만들어내고, 그 잡음을 방황의 지표로 제시하면서, 그는 무사히 할리우드에 귀의한다. 결국 이 영화의 독백은 할리우드에 귀의한 사람의 신앙간증이요 할리우드에 제출하는 반성문이다. 이 불편한 심사를 드러내기 못내 쪽팔렸던지 ‘두뇌게임’, ‘영화적 장치’, ‘유머’로 빙자될 수 있는 요란한 수다가 등장한다. 진실을 가리기 위한 수다, 그러면서 세상의 시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수다, 그건 정말이지 천박한 작부의 화장술이다.
나는 부드러운 직설을 가장 좋아한다. 부드러운 직설은 진지한 완곡어법이지만 유사품에 비열한 간접화법이란 게 있다. 영화로 말하면 생산과정의 고통을 자신이 삼켜서 관객에게 편안하게 근사한 내용을 전달하는 게 부드러운 직설이다. 부드럽게 직설적으로 말할 수 있는 자는 자족과 확신에 도달한 자이다. <어댑테이션>은 거꾸로 간다. 내용없음을 가리기 위해 현란한 영화적 기교로 관객의 머리를 뻐근하게 만든다. 동시에 가슴은 공허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나 정말 영화 잘 만들지, 그것도 진지하게 말이야’이다. 전문성의 담 뒤에서 말을 한다는 건 소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간혹 그런 화법이 치열함을 가장하는 편집증의 문화는 의사소통의 가장 큰 적이다. <어댑테이션>은 업계 사람들끼리만 돌려보았으면 딱 좋은 영화다.남재일/ 고려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