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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칸 리포트,두 보고서 [3]
이다혜 2003-05-30

3부작의 다른 작품들은 어떤 스타일로 연출할 계획인가. 3편의 영화 스타일이 모두 다 똑같다. 말하자면 내 방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거다. (웃음) 이 작품도 초기엔 평범한 로케이션을 염두에 두고 스크립트를 썼다. 사생활이라곤 불가능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기엔 어딘가 미흡하게 느껴졌고, 그때 ‘지도’처럼 평면적이고 투시적인 세트가 떠올랐다. 조금 급진적이긴 해도, 형식적으로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해야만 인물들의 내면 심리를 적확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요즘 극히 미니멀하고 콤팩트한 비주얼에 맘이 끌린다. <반지의 제왕>을 봐라. 모든 게 너무 넘치는 영화다. 그래서 아무 재미가 없다. 큐브릭은 <배리 린든>을 만들 때 원하는 빛, 원하는 구도를 잡아내기 위해 석달 넘게 기다렸다. 요즘 컴퓨터그래픽 기술이면 한두 시간 안에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런 비주얼에서 무슨 감흥을 느낄 수 있겠나.

니콜 키드먼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다른 배우를 고려하진 않았나. 니콜이 나와 작업하고 싶다는 것을 먼저 알려왔다. 직접 만나보고, 그녀에게 맞춰서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배우들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뽑아내는 편인데, 그런 의미에서 니콜이 잘해준 것 같다. 그 배우가 아닌 다른 배우가 출연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하기 힘들다. 알 수 없다.(라스 폰 트리에의 첫 번째 초이스는 마돈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렌 바콜, 벤 가제라, 필립 베이커 홀 같은 대배우들에게 그렇게 작은 역을 맡기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로렌 바콜은 구스베리 밭을 갈고, 필립 베이커 홀은 마크 트웨인의 책을 읽는다. 대사는 거의 없다). 그들이 원했다. 작은 역할이라는 걸 분명히 알았는데도, 하고 싶다고 하더라. 좋은 배우들이 작은 역할을 맡아주었을 때 고마운 점은, 그들이 아무리 짧은 순간에 스쳐지나간다고 해도 캐릭터 전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리스마, 개성, 재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도그빌>의 개봉판은 이번 영화제 버전에서 30분 이상 줄어든 2시간20분 버전이라고 알고 있다. 왜 두 가지 버전이 필요했나. 타협하고 절충한 거다. 애초 2시간 분량으로 만든다는 게 계약 내용에 있었고, 내가 그걸 지키지 못했으니,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긴 버전이 이렇게 소개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데이비드 보위의 <영 아메리칸>이 흐른다(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가사 때문에 물의를 일으켰던 유명한 곡이다). 그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데이비드 보위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아왔고, 그를 위대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그 노래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냥 갑자기 들었다. 원래는 폴 사이먼에게 작곡을 부탁했었다. 그런데 그가 당시 ‘작곡 모드’가 아니라 ‘연주 모드’라며 거절하더라. 영리한 대답인 것 같아서, 나중에 써먹으려고 외워뒀다. (웃음)

당신은 그 어떤 감독보다도 칸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그렇다. 내가 만든 영화는 거의 모두 칸영화제에 초청 상영됐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올 때마다 기분이 좋다. 물론, 집에 돌아가면 더 좋지만.

상을 받는다는 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여기 칸을 5번이나 왔다. 통계적으로 볼 때 이렇게 많이 오고도 황금종려상을 받지 못한 경우는 거의 없다. (웃음) 그러니 휴, 다행이지 뭔가. 지난번에 상을 받았으니, 마음의 짐은 덜었다. 상받을 때까지, 휠체어 신세를 질 때까지, 오고 또 오지 않아도 되니까. 상은 물론 좋은 거다. 하지만 큰 도움이 되거나 대단한 변화를 주는 것 같진 않다. <어둠 속의 댄서>가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이 실질적으로 날 도와주진 않았다. <도그빌>의 경우도 니콜 키드먼이 출연했다고 해서 없는 상업성이 저절로 생기진 않을 거다. 이런 유의 영화는 그렇다. 칸은 나 같은 감독들이 영화를 소개하기 매우 적합한 곳이다. 인정한다.

매번 도발적인 영화들을 만들어오고 있는데, 그런 도전에 대한 강박이 당신을 지치게 하지는 않나. 세상과 관객에게 도발한다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도발한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복수를 주요 테마 중 하나로 끌어들이는 것 역시 내 신념에 대한 도발이었다. 복수나 응징이라는 건 미개하고 무익한 일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스스로 금기시해온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물론, 테크닉적인 측면에서는 더더욱 도발을 즐기는 편이다.

차기작으로 거론되던 <다이멘션>과 <킹덤3>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모르겠다. <킹덤3>의 시나리오는 나와 있는 상태다. 그렇지만 제작 성사여부는 불투명하다. 인생은 한번뿐이고, 나는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느긋해지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그동안 ‘생산’에 대한 욕심이 지나쳤다.

왜 스스로를 그렇게 혹사하는가. 그러지 않을 때도 있나. 영화 만들기는 나 자신에게 내리는 형벌 같은 거다. 그게 내 문제다. 스스로를 ‘희생자’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걸 마조히즘이라 해도 무방하지만, 일하지 않는다는 것, 나를 완전히 비워낸다는 것에 대한 공포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 같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영화와 관계되지 않는 일이라면, 플라이 피싱을 좋아하는데, 실력은 엉망이다. 가끔 사냥을 하기도 하는데, 그것도 잘 못한다. 동물들이 날 비웃고, 나도 놈들이 무섭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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