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660년, 장소는 지금의 충남 연산군, 당시는 황산벌이라 불렸던 곳. 나당연합군에 포위당한 가운데, 백제의 5천 병사가 신라의 5만 대군과 격렬하게 맞부딪치고 있다. 숨소리마저 내기 힘든 긴장이 차오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백제의 장수가 근엄하게 입을 뗀다. “아, 이눔들아 뭐더러 여그까지 왔다냐?” 비장한 표정의 신라의 장수가 힘차게 맞받아친다. “야, 이 쉐이들 후딱 문 몬 여나? 확 쌔리뿔라!” <황산벌>은 비장함과 처절함으로 역사 속에 기록돼 있는 황산벌전투가 이렇게 사투리로 이뤄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코미디영화. <황산벌>은 단지 <개그콘서트> ‘생활사투리’류의 유머만을 구사하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의 폐해인 지역감정의 뿌리를 슬쩍 건드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 5월20일 제작발표회를 통해 처음 실체를 드러낸 이 영화는 역사물답게 위용있는 세트장과 잘 만들어진 의상을 자랑했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백제역사재현단지에 마련된 세트는 2만여평의 대지에 5억여원을 들여 제작됐다. 강원도에서 운반된 죽죽 뻗은 나무로 담을 친 백제군의 성(城)과 신라군의 전진기지가 1400여년 전의 피비린내를 다시 부르는 듯 생생했다. 시네마서비스가 투자한 35억원의 순제작비 중 상당수가 이 세트장에서 쓰이게 된다.
박중훈이 계백 장군으로, 정진영이 김유신 장군으로 출연하며 오지명, 김선아, 이문식, 이원종 등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5월 초부터 양수리, 전북 고창 등에서 촬영을 했으며 5월27일부터 이 세트장에서 본격적인 전투를 담게 된다. 제작사 씨네월드의 대표이자 <키드캅>의 감독인 이준익씨는 <달마야 놀자> <간첩 리철진> 등 센스있는 코미디를 기획했던 인물. <황산벌>은 8월까지 촬영을 마치고 올해 하반기 극장을 찾을 예정이다. 사진 조석환·글 문석
♣ <불후의 명작> 이후 오랜만에 국내 스크린에 복귀한 박중훈은 “관객의 사랑이 그리웠다. 이 작품이야말로 내 나이, 경력에 적합하며 내가 처한 상황과도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서울 출신인 정진영은 경상도 출신 한 스탭의 사투리를 담은 CD를 들으며 김유신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에서 선보인 경상도 사투리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 이문식이 맡은 ‘거시기’는 백제 병사로는 최후의 생존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관객에게 전이시켜주는 인물이다. ♣ 10년 만에 메가폰을 잡게 되는 이준익 감독은 “과거 배경에 최근의 트렌드인 사투리 문화와 현대적 테크닉을 가미해 진부하지 않은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