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잡지 시장이 침체의 늪에 빠지며, 인터넷에 연재된 만화나 기획, 교양만화가 만화시장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한권 혹은 여러 권의 재미있는 만화를 안정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잡지 연재를 통해서다. 만화란 것이 생각보다 창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사람의 절대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의심이 간다면 지금이라고 만화를 집어들어 한 페이지에, 한칸에 얼마나 많은 선들이 존재하는가를 확인해보라. 선 하나가 있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페이지를 배분하고, 칸을 나누고, 숏과 앵글을 결정하고, 미장센을 배치하며, 이를 기반으로 콘티를 만들고 밑그림을 그린 다음에 펜선을 입히고, 톤을 붙이고, 마무리를 해야만 한 페이지의 원고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원고가 다시 편집부의 손으로 넘어가 식자 작업을 하고, 디자인을 거쳐야만 만화책이 된다. 한권의 만화를 그리기 위한 시간과 비용을 작가에게 먼저 투자하라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잡지는 여전히 재미있는 만화를 만들어내는 든든한 후원자다. 어디 그뿐이랴, 잡지는 말 그대로 한권에 다양한 작품들을 담아낸다. 내 취향뿐만 아니라 타인의 취향도 존재한다. 낯선 취향과 만나며 새로운 만화의 재미를 깨닫는다. 우리나라의 극화에 ‘단편’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 잡지를 통해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잡지史의 희로애락
한국 만화역사에서 한때 연속적으로 잡지가 창간되던 때가 있었다. 1988년 <아이큐점프>와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1989년 <모던타임즈> <로망스> <하이센스>가, 1991년에 <댕기> <소년챔프>가, 1992년에 <나나>가, 1993년에 <터치> <윙크> <실루엣> <미니>가, 1994년에 <영챔프> <영점프> <빅보물섬> <펜팬> <보이스클럽>이, 1995년에 <빅점프> <투엔티세븐> <미스터블루> <화이트> <마인> <밍크>가, 1996년 <이슈>와 1997년 <나인>이 창간되었다. 잡지만화의 시대라 구분되는 1988년에서 1997년은 청소년보호법의 제정과 만화작가들의 고발, 서점의 만화철수, IMF와 대여점 증가로 이어지며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이것으로 한국 만화에서 가장 빛나던 시기의 하나인 잡지만화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물론 1997년 이후 대여점의 증가에 따른 수익증대로 일본 만화 판권을 사기 위해 잡지 창간을 경쟁적으로 벌인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90년대 후반부터 들리는 소문은 오직 잡지 폐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많던 만화팬들을 모두 어디론가 떠나간 듯 보였다. 사람들은 자조적으로 ‘과연 만화를 보는 사람이 몇명이나 되는 걸까’라고 되물었고, ‘일본 만화를 대여점에서 보는 사람을 빼면 얼마 없을 것’이라는 비관에 이르기도 했다.
반가운 작가들 성실하게 돌아오다
이 시기, 새로운 잡지가 나왔다. 시공사에서 새롭게 격월간 잡지 <오후>를 내보낸 것이다. 보통 잡지보다 작고(국판 사이즈), 무려 570여쪽에 이르는 분량에 장편은 9편뿐이다. 그러니까 한 작품당 40쪽이 넘는다. 권교정의 <마담베리의 살롱>은 59쪽, 송채성의 <미스터 레인보우>는 71쪽, 유시진의 <온>은 무려 77쪽이다. 한마디로 풍성하다. 아주 오랜만에 만화를 ‘읽는 재미’를 느꼈다. 평론가나 필자 이전에 만화 팬으로 지겹게 반복되는 연재 펑크와 두세쪽에 불과한 민망함이나 화실일기로 땜빵된 만화가 아닌 제대로 된 만화를 잡지에서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게다가 오랜만에 잡지에 등장한 작가들은 기본적인 자기 스타일에 충실하며 조금씩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를 보는 것도 반갑다.
송채성은 특유의 유머를 그대로 간직한 채 앵글과 작화가 정돈되었다. 한승희의 선은 매우 섬세해졌으며, 권교정은 자신이 그리워한 중세로 돌아가 멋들어진 바로크풍 판타지를 연출한다. 특유의 매력들도 여전하다. 나예리가 창조한 굵은 선의 캐릭터들은 여전히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유시진의 33쪽에 걸친 대화 시퀀스를 읽어내려가는 재미도 새롭다. 예전에는 미쳐 느끼지 못했던 그의 매력이다. 이시영은 자신이 따뜻한 코미디만을 만드는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날카로운 반전을 통해 증명한다. ‘떡’이 주인공인 석동연의 4칸 만화도 빼놓을 수 없다. 석동연은 어떤 대상이라도 캐릭터로 만들고, 거기서 4칸의 재미를 뽑아낸다.
유시진은 자신에게 주어진 페이지에서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것에 일단 만족합니다”라고 말했다. 슬프다. 우리 작가들이 ‘단지 만화를 그리는 것’보다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한권의 만화잡지가 보여준 한국 만화의 힘은 나를 들뜨게 하지만, <오후>에 연재한 작가보다 수십, 수백배 많은 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은 한국 만화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하지만, 늘 최악의 순간에 변화는 시작된다.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