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토리안은 바티칸으로부터 파문당해 단 2개의 수도원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소수 교단이다. 독일에 있는 수도원에는 고지식한 원장, 젊었을 때 ‘좀 놀아본’ 벤노, 시골 농부 출신의 타실로, 아기 때부터 수도원에서 자라 속세를 전혀 모르는 아르보가 식구의 전부다. 수도원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갑작스런 원장의 사망으로 위기에 몰리자 남은 3명의 수도사들은 교단의 보물인 규범집을 마지막 남은 이탈리아의 수도원에 전해주러 긴 여행길에 오른다. 걸어서.
■ Reviewcantus:(라틴어) 노래, 선율. cantor:(성가대의) 선창자. 칸토리안 교단은 이름이 의미하는 바, 주에 대한 찬양을 생명처럼 여긴다. 대체로 ‘침묵수행’을 생활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이들이 한번 입을 열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멜로디와 화음이 밝은 빛처럼 쏟아진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권위로 가득 찬 중세의 수도원이 웃음을 금지시켰듯, 교회는 신에 대한 예의를 육화된 선율의 환희로 바꾸려는 불손함으로 받아들였는지 칸토리안을 이단시한다.
끝내 궁지에 몰리고 만 청년, 중년, 노년의 세 수도사. 이들이 이탈리아를 향한 로드무비를 시작하자 격조높은 그레고리안 성가 같아야 할 삶이 갑자기 힙합 스타일로 바뀐다. 세속의 욕망이 차례로 그들을 유혹의 벼랑으로 호출해대고 여기에 좌충우돌 맞서야 하니 수도사판 <세상 밖으로>다.
그런데 진정한 순수는 유연성과 탄력성이 무한대에 가까운가보다. 도시형 꽃미남에 ‘물린’ 도시의 여성들은 낯선 꽃미남 아르보를 보고 다들 깊은 흥미를 보인다. 급기야 이들 일행과 잠시 동고동락하게 된 여기자와 깊은 사랑에 빠져드는데, 육욕에 빠져든 아르보를 목격하고도 선배 수도사는 그를 나무라지 않는다. 또 중년의 타실로는 식욕과 가족애에, 노년의 벤노는 학구욕과 명예욕에 휘둘리지만 그런 욕망들을 무조건 적대시하지 않는다.
<신과 함께 가라>는 끝내는 성스러운 종교영화로, 수도사를 미끼로 던진 관음적인 영화로, 적당히 관습을 따라가는 로드무비로 대우받을 수 있다. 이보다는 탈속과 불경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신에 대한 착취와 신에 대한 경배의 차이를 오락적으로 드러내는 흥미로운 성장영화라는 게 더 어울려 보인다. 나이가 적건 많건, 수도사가 되건 말건 어느 순간 겪어야 할 성장의 관문들에 세 인물을 대리출석시키다보면 어느덧 탈속의 유쾌함을 잠시나마 누려볼 수 있다. <글루미 썬데이>의 음악을 맡았던 데틀레프 피터슨이 들려주는 선율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