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성과 폭력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언제쯤 만들어졌을까. 영화사를 더듬어볼 때, 성과 폭력은 무성영화 시절부터 스크린을 수놓던 단골 소재였다. 관객몰이를 위한 눈요깃거리로 전시되던 이 원초적인 즐거움은 그러나 20년대 들어 스타들의 스캔들로 드러난 할리우드 타락상의 직접적인 반영인 양 지탄받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34년 미국 영화사에 획을 그은 중대 사건이 일어나니, ‘헤이즈 코드’로도 불리던 검열코드의 등장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검열 등장 이전 할리우드영화의 자유분방함은 과연 어느 정도였다는 말일까. 5월17일부터 LA, UCLA의 필름 아카이브가 주관하는 ‘검열받지 않은 원죄: 코드 이전의 할리우드’ 시리즈는 바로 이 궁금증을 풀어줄 14편의 검열 이전 시기의 영화들을 상영한다.
악의 소굴이라는 오명을 씻고자 할리우드가 자체 검열코드를 만들어낸 1930년에서 본격적으로 이를 적용하기 시작한 1934년까지의 짧은 기간은 대공황과 증권시장의 붕괴 등으로 전통적인 미국사회의 가치가 흔들리던 시점이었다. 이번 UCLA 시리즈는 비디오나 DVD로도 출시되지 않고 니트레이트 필름으로만 남아 있는 영화사의 미지의 페이지를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에 소개되는 14편의 영화들은 성이나 폭력 묘사의 수위뿐 아니라, 동성애, 마약, 혼전임신, 미혼모, 낙태 등 첨예한 이슈들을 거리낌없이 묘사하고 있다. 인권문제가 이슈화되기 이전이라 인종혐오, 인종갈등 등이 여과없이 표출된 점도 눈에 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무성영화 시절 고안되어 고전기 할리우드를 거쳐 도식화된 착한 아내, 어머니 아니면 요부라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넘어서는, 이른바 개성있는 ‘나쁜 여자’들이 스크린을 종횡무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성영화 시절의 섹시 스타 클라라 보가 섹시하고 겁없는 텍사스 걸로 열연한 <콜 허 세비지> 등이 대표적인 작품. 사회의 도덕률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란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혼란한 시대에 맞서 적극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간 이들 나쁜 여자 캐릭터는 검열코드가 적용되면서 ‘꿈의 공장’ 할리우드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할리우드에서 가위질의 무게에 눌려 사라진 것은 비단 나쁜 여자들뿐만은 아닐진대, 에 따르면 도발적인 이슈들을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던 성숙한 영화 관객도 그중 하나라고. 70년 전의 빛바랜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의식만큼은 지극히 현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