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화제의 ‘국제적’ 구색 맞추기 덕을 톡톡히 보는 나라들이 있다. 한때 위풍당당 영화선진국의 위용을 자랑했던 독일도 이제는 덕보기 카테고리에 속할 뿐이라면 좀 심한 표현일까? 재기의 부푼 꿈을 안고 영화제에 참가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기가 도대체 몇년째인가! 크리스티나 바이스 독일 문화부 장관은 이제 외친다. 물릴 때도 되었다고. 남의 잔칫상에 장단 맞춰주기도 말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최근 개최된 칸영화제를 보자. 독일영화는 2년째 경쟁부문에 출품작을 내지 못했다. 주목받지 못하는, 참가자들이나 자축하고 떠드는 섹션에서 아웃사이더 역할이나 하다 올 뿐이다. 그래서 바이스 장관은 독일영화가 다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독일영화 진흥에 문화적 악센트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녀의 전임자들도 의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바이스 장관은 말에 그쳤던 선배들과 달리 가시적 첫 결실을 제시했다. 여러 이익집단들의 열띤 로비 속에서 마련된 독일 영화진흥법 개정안이 드디어 내각의 승인을 받은 것이다. 이 개정안은 올해 12월 연방하원과 상원에 상정된다.
개정안이 지향하고 있는 목표는 다음과 같다. 영화산업은 결국 돈, 따라서 성공은 ‘돈’으로 칭찬해주고, 동시에 예술적 질을 향상하도록 ‘돈’으로 지원한다. 오로지 질적으로 우수한 영화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바이스 장관의 지론인데, 평소 대중의 비위에만 급급한다고 생각했던 제작자들까지 그녀의 지론에 모조리 고개를 끄덕여 몹시 놀랐다는 후문도 있다.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은, 일단 독일영화진흥자문위원회를 구성, 그리고 영화진흥 기금을 단계적으로 대폭 인상한다. 관건은 영화진흥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방송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데 있다.
또한 앞으로 15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흥행성적에 따라 지원금을 지불한다. 영화제에 참가하거나 수상하는 경우 플러스 점수가 가산되어, 차기작을 번개같이 제작할 수 있도록 상응하는 지원금을 지불한다. 유일한 전제조건은 독일 관객 최소 5만명 동원.
영화진흥 의욕으로 가득한 장관이 넘어야 할 장애물은 진흥기금 마련을 위해 방송사들이 지불해야 할 액수다. 이 액수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출범할 독일영화진흥자문위원회가 방송사들과 논의, 액수를 정할 것이라고 하지만, 독일영화진흥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방송사들의 태도는 대단히 소극적이다. 지금까지 방송사들이 보인 호의라고는 영화광고를 무료로 방영해주겠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진흥기금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면 구걸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바이스 장관. 당찬 여성장관의 결의에 찬 노력이 결실을 거둘 경우 어쩌면 내년쯤 칸 경쟁부문에서 독일영화를 만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