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월 칸영화제. 김혜리. 노트북 컴퓨터 분실.
2000년 5월 칸영화제. 허문영. 취재수첩, 프레스카드, 녹음기 분실.
2001년 9월 베니스영화제로 가는 도중, 프랑크푸르트 공항. 황혜림. 신용카드, 현금 3천달러가 든 지갑 분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 해외영화제 취재기자들의 사고다. 전부 영화제 전문 절도범들의 짓이다. 이럴 땐 어떡하면 좋은가. 그냥 몸으로 때운다. 김혜리는 울다가 영화사 직원의 노트북을 빌려서 송고했고, 돌아와서 회사에 150만원 변상했다. 영화제 4일 동안 취재한 모든 것과 프레스카드를 잃어버린 허문영은 하루 반 동안 공치며 쫓아다닌 끝에 프레스카드만 간신히 재발급받았다. 기사는 상당 부분 기억력에 의존해서 썼다. 무일푼으로 심야에 베니스에 내린 황혜림은 친절하지만 돈은 꾸어주지 않는 이탈리아 아저씨 도움으로 예약한 호텔에 도착했으나, 그 다음날이 휴일이어서 호텔방에 갇혀 하룻동안 굶으며 지냈다. 이튿날 한국영사관에 찾아가 300달러 꾸어서 민생고를 해결했다.
해외영화제 취재는 아마도 영화전문지 기자가 누리는 특권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걸 두려워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 비디오 코너(지금은 DVD와 합쳐진)에 ‘고진감래’라는 등급이 있다. 본래의 뜻은 괴로움을 다하면 보람이 온다는 것, 우리의 뜻은 ‘고독한 작가주의에의 동참’. 심오하지만 대중성은 별로 없는 예술영화를 말한다. 3대 국제영화제는 고독했던 작가주의가 한데 모여 잔치를 벌이는 곳이다. 그러니 취재기자는 아침에 눈떠 깊은 밤 잠들 때까지 하루종일 고진감래하며 동참한다. 좋다. 영화로 밥 먹고 사는 자들이 작가주의에의 온종일 동참을 어찌 불평할 수 있으랴.
밤새 기사 쓰고 아침 8시 반이면 시작하는 또 다른 작가주의에 동참하러 달려간다. 한번 영화제 갔다 하면 모두 150∼200매 정도를 토해내야 하고 영화제 중에도 원고를 보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그게 직업이니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주의 영화의 특징은 대체로 매우 길다는 것이다. 내가 칸에 갔을 때, <유레카>는 3시간40분, <귀신이 온다>는 3시간, <하나 그리고 둘>은 2시간50분이었다. 이걸 견딜 수 없었던 미국 평론가들은 저주에 가까운 악평을 이 영화들에 쏟아부었다.
긴 것까지는 감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굉장한 난관이 있다. 작가주의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자극적인 사건은 별로 없는 대신 대체로 롱테이크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달콤한 보람은 롱테이크의 시간을 멀쩡한 정신으로 동참한 사람에게만 온다. 이건 때로 고통이다. 기사 쓰느라 거의 밤새고, <유레카>를 아침 8시 반부터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를 이길 수 없었다. 잠깐 혼절했는데, 두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혼절 직전에 막 출발한 영화 속 버스는 여전히 운행 중이었다. 그리고도 한 시간 반이 더 지나서야 멈췄다(솔직히 말해, 이 영화가 정말 훌륭하다고 느낀 건 부산영화제에서 편하게 다시 봤을 때였다. 자극으로 가득 찬 그러나 내가 허접하다고 생각하는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이 지난해 칸에서 호평받은 건 영화제라는 환경의 특수성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여기다, 사고까지 나면 설상가상, 눈앞이 깜깜해진다. 그리고 사고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영화제 취재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성실하고 잠 많은 박은영과 객지에서 더욱 강해지는 정진환과 늙지 않는 영화청년 정성일씨가 프랑스 파업 때문에 정말 산 넘고 물 건너서 칸에 도착해, 첫 원고를 보내왔다. 그 멀쩡한 말투 속에 피로와 안간힘이 느껴진다. 이 쓰리톱이 고진감래하기를, 그리하여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더없는 기쁨을 누리기를, 결정적으로 그 기쁨을 비싼 출장비가 우습게 보일 만큼 멋진 기사로 전해주기를 바란다. 지난해에도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