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숨긴 나락 무어의 슬픈 미소 오래도록 가슴에
지난해 미국의 각 언론에서 격찬을 받았던 토드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이 23일 개봉한다. <포이즌>으로 뉴퀴어 시네마의 기수로 떠올라 <세이프> <벨벳 골드마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 감독이 돌아간 곳은 1957년 코네티컷주의 소도시 하트포트. 미세한 균열도 허락하지 않는 숨막히는 1950년대 미국 부르주아 사회에 그는 ‘하늘도 허락하지 않을’ 사랑 이야기를 가슴 저리게 그려넣었다.
그가 직접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1950년대 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 <슬픔은 그대 가슴에>처럼, 영화는 크레디트의 글씨체나 천천히 카메라가 붉은 단풍을 훑어내려오는 첫 장면부터 눈 시린 색깔과 단아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캐시(줄리언 무어)가 입은, 허리를 꽉 조이고 봉긋 퍼진 밝은 색깔의 옷, 바로크 풍의 집안, 파스텔 톤의 자가용 등은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조차 ‘병’으로 취급당하던 1950년대의 상징이다.
그 ‘병’은 이렇다.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남편(데니스 퀘이드)을 둔 가장 우아한 가정주부로 지역신문에서까지 취재 오는 캐시는 어느 밤, 숙직하는 남편을 찾아간 사무실에서 남편이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누구에게도 상의할 수 없는 비밀로 인해 완벽했던 삶에 금이 가기 시작한 그가 유일하게 마음의 위안을 받는 건 대학까지 나왔지만 정원사 일을 하는 흑인 레이몬드(데이스 헤니스버트)다. 하지만 그 사회에서 동성애가 ‘병’이라면, 흑인과 백인의 사랑은 용납할 수 없는 ‘범죄’다. 캐시와 레이몬드의 만남은 곧 악의 섞인 소문으로 마을에 번지고, 곧이어 레이몬드의 식구들에게 테러에 가까운 보복으로 돌아온다. 스스로 입밖에 꺼내기도 힘들 만큼 내재화한 동성애에 대한 억압에 인종 차별까지 겹쳐지면서 50년대 미국 사회는 자꾸만 ‘천국으로부터 멀어져’간다. 그 마을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운 채로.
도시를 떠나는 레이몬드에게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캐시는 말하지만, 관객도 감독도 아무도 이들의 미래를 희망으로 볼 순 없을 것이다. 다만 떠나는 레이몬드를 바라보며 플랫폼에 서 있는 캐시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그녀의 삶’을 살 것 같다. 인간을 옥죄는 사회를 밑바닥에 숨겨놓은 데 그쳤던 50년대 멜로드라마 장르를 <파 프롬 헤븐>은 뛰어넘는다. 영화 장르에 대한 지식도 필요없을지 모른다. 엘머 번스타인의 우아하면서 센티멘털한 음악과 슬픔을 한가득 머금은 미소를 짓는 무어의 연기만으로, 이 러브스토리는 ‘그대 가슴에’ 남을 것이다.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