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해외뉴스
칸의 두 감독, 폰 트리에와 반 산트
2003-05-23

미국 겨눈 <도그빌>·<엘리펀트>, 심드렁했던 '칸'의 선택은‥

21일(현지시각) 까지 경쟁작 20편 가운데 15편의 봉인이 뜯기면서 다소 심드렁했던 56회 칸 국제영화제의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칸 경쟁부문에만 5번째 초청된 60대의 거장 라울 루이즈는 미래의 스위스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코믹 살인극을 마술적 리얼리즘의 터치로 그린 <그 날>을 들고와 ‘영원히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유쾌하게 증명했고, <> 이후 12년 만에 칸에 초청된 터키 영화 <우작>(누리 빌게 세일런)은 관조하듯이 그려낸 깊은 삶의 성찰로 현지 언론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로드무비에 포르노그래픽을 방불케 하는 절망적인 사랑을 그린 빈센트 갈로의 <브라운 버니>는 찬반이 분명하게 갈렸고 따뜻한 성장영화를 들고 온 구로사와 기요시(<밝은 미래>)는 아시아 기자들에 비해 서구 기자들의 반응이 썰렁했다. 앙드레 테시네, 푸비 아바티, 헥토르 바벤코 등 유명작가들의 신작은 평이한 대중영화에 그쳤다.

하지만 뭐라해도 중반이후 칸을 흥분시킨 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사진)와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이다. 아직 클린트 이스트우드,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 등의 작품이 남아있긴 하지만 몹시도 논쟁적인 주제를 완전히 새로운 영화형식으로 다룬 이 두 작품은 현재까지 현지 평론가들의 가장 높은 평균점수를 받으며 적어도 하나씩 상을 가져갈 것이라는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공교롭게 두 작품은 모두 '미국'에 관한 이야기다. 칸/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사진 정진환 <씨네21> 기자 jungjh@hani.co.kr

★'엘리펀트' 구스 반 산트 감독

"시처럼 푼 콜럼바인"

고백하자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던 기자는 마지막 1/4부터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칸에 온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이 콜럼바인 고교 총격사건을 빚은 미국사회를 '확대경'으로 펼쳐놓았다면, 한 편의 시 같은 반 산트의 영화는 같은 소재로 그 대척점에 섰다.

고교생 아마추어 배우들을 기용해 16mm 영화 포맷인 1.33대 1로 찍은 이 영화는 러닝타임의 3/4을 어느 가을날, 한 고교 학생들의 잔잔한 생활을 보여주는 데 바친다. 존은 차 열쇠를 학교사무실에 맡겨놓고, 엘리아스는 연인들의 사진을 찍고, 축구를 마친 네이트는 여자친구 캐시를 만나러 간다. 그것은 삶의 한 단면인 일상적인 하루다. 다른 인물로 넘어갈 때마다 카메라는 그 주인공의 등을 조용히, 길게 따라간다. 때로는 같은 순간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여러번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사건의 원인이나 해결책이 드러나는 건 아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흐르며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로 흘러가는 시간을 잘라 보여주고 사건을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앞에 나왔던 아이들이 총을 맞고 쓰러져갈 때, 이제까지 쌓여온 이미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보는 이의 감정을 폭발시켜버린다. 비극을 전달한다는 면에선 무어의 작품이 갖지 못한 미덕이다. 내용을 모르면 충격적이고 알고 보면 너무 슬픈 영화. 몇 년동안 김빠진 맥주같은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던 반 산트는, 혼란스런 10대들을 쓸쓸하며 애정있게 바라보던 80년대 자신의 영화의 정신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학생들 잔잔한 일상 따라다니며

혼란스런 10대 향해 애정어린 눈길

제목의 의미는?

북아일랜드의 폭력문제를 다룬 영국 앨런 클락 감독의 89년작 <엘리펀트>에서 따왔다. 클락 감독은 ‘거실 안의 코끼리’라는 서양 속담처럼 무시되기 쉽다는 뜻으로 썼다고 들었다. 내게 ‘엘리펀트’는 여러 장님들이 각자 코끼리의 귀, 다리 등 다른 부분을 만지면서 서로 이게 나무니 뱀이니 다퉜다는 인도의 옛말처럼 ‘아무도 전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다.

영화는 어떻게 시작했나?

99년 사건 직후엔 범인인 두 소년에 초점맞춘 드라마를 만들려 했다. 왜 그랬고 의도는 뭐였나 하는. 물론 그때도 무어처럼 전체를 보여주기 보다는 두 소년에 집중하려는 생각이었다. 제작자를 구하러 다니며 시간이 흐르는 사이 다른 사람이 같은 소재로 쓴 <타미 건>도 나오며 생각이 더 발전했다. 보는 이마다 각자 다른 느낌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에 사건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설명이 없다.

구체적 설명을 안 주는 게 목표였다. 관객이 의문을 갖고 생각할 수 있도록. 물론 내 나름의 콜럼바인 사건에 대한 생각이 있다. 난 그걸 설명하기 보다 시와 같은 표현으로 보여주려 했을 뿐이다. (그는 프랑스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나를 형사 콜롬보라 생각한다.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이라고도 말했다.)

범인이 되는 학생이 치던 ‘엘리제를 위하여’가 총격장면에도 나오는데?

범인역을 맡은 에릭이 우연히 피아노를 치는 걸 듣고 다음날 촬영장소에 피아노를 갖다놓아 영화에 집어넣은 거다. 이런 식이 많았다. 아주 거친 스크립트만 있고 아이들은 자신의 생활을 대사로 했다. 지난해 작품 <게리>를 찍으며 난 다시 이런 방식으로 돌아왔다.

★'도그빌' 라스 폰 트리에 감독

"나는 미국이 무섭다"

이번에는 사전정보를 가지고 들어가야지, 결심한 기자는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 자료를 읽고 절망했다. 무려 2시간58분짜리(한국 등 일반개봉땐 2시간 편집본이 걸린다)인데, 이렇다할 세트도 없이 바닥에 분필로 누구집, 누구집 써놓은 스튜디오 안에서 6주동안 찍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사람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잔인한 우화였다.

프롤로그와 9장으로 나뉜 영화는 존 허트의 내레이션으로 대공황시기였던 1930년대 미국의 록키 산맥 막다른 기슭에 있었다는 작은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그빌’, 말 그대로 ‘개 마을’이다. 평화로운 이 마을에 아름다운 도망자 그레이스(니콜 키드먼)가 나타난다. 작가이자 자칭 마을의 철학자 톰(폴 베터니)은 사람들에게 그를 숨겨주자고 한다. 그레이스의 추격자들이 수배 전단을 붙이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은 진심으로 착해 보였다. 하지만 위험인물을 숨겨준다는 의식이 번져나가며 남자건, 여자건, 아이건 변한다. 너무나 잔인하게. 목에 개목걸이가 묶인 채 밤마다 남자들의 성욕을 푸는 대상까지 된 그레이스는 죄수이자 노예다.

지옥같은 세상으로부터 이 마을로 도망쳤던 그레이스가 발견한 건 ‘개처럼 본능에 따르는’ 사람들의 똑같은 지옥이었다.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폰 트리에가 ‘미국 3부작’ 가운데 1부로 명명한 이 영화를 신랄한 미국역사에 대한 야유로 보이게 했다. 영화가 끝나면 데이빗 보위의 ‘영 아메리칸’이 흐르며 미국정부가 30년대 대공황시기에 가난한 이들을 찍어두었던 흑백사진이 겹친다.

대공황시대 '개마을'에서 벌어지는

3시간에서 2분 모자란 잔혹한 우화

어떻게 시작했나?

<어둠속의 댄서>때 칸에서 미국기자들로부터 ‘미국도 한번 안 오고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드냐’는 질문을 듣고, 그래, 더해보자 생각했다. <카사블랑카>를 만들 때 미국인들이 카사블랑카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난 들어보지 못했다.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있나?

브레히트의 음악극 <서푼짜리 오페라>에 복수의 내용을 담은 ‘해적 제니’라는 노래에서 처음 출발했다. 형식은 70년대 세익스피어 왕립 극단의 텔레비전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난 <킹덤>이후 기술적이며 기교적인 영화를 배제하려 했다. 세트와 소도구를 최소화한 이 영화는 관객들이 캐릭터에만 집중하도록 할 것이다.

꼭 미국의 모습이라고만 볼 순 없지 않나?

물론 어느 곳에서도 있을 수 있는 얘기다. 인간에겐 선과 악이 모두 있고, 상황에 따라 그것들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것이 진짜 미국의 모습이라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난 내 머리 속에 있는 미국이란 말이다. 그 이미지는 덴마크의 텔레비전의 80% 이상을 채우는 미국의 작품이나 미국의 뉴스에서 나온 거다. 타자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자신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 안티 미국 영화인가?

누군 날 공산주의라 할지 모르지만 난 공산주의자는 아니다. 심지어 미국정보에 휩싸여 사는 난 나를 미국인이라고 조금 느끼기까지 한다. 아니, 되고싶다.(웃음) 하지만 미국이 무섭다. 잘못된 정보건, 어긋난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든. 난 ‘미국 해방’ 캠페인부터 벌이고 싶다. 그건 ‘이라크 해방’ 캠페인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3부작은 어떻게 진행되나?

그레이스한테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나 따라갈 것이다. <맨덜레이>와 <워싱턴>이라는 제목이다. 바로 어젯밤 키드먼에게 2, 3부의 내용을 얘기해줬는데 계속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들 앞에서 확인해줘요, 니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