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밴드 블러의 신보 <Think Tank>는 꽤 요란한 먼지바람을 몰고 등장했다. 이윽고 표현 그대로 ‘먼지가 가라앉자’ 눈 비비던 사람들의 시야에 드러난 것은 네명의 식구 중 하나가 집을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가정불화란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13년 넘게 함께한 식구인데 누군들 그 빈자리에 속이 쓰리지 않겠는가. 당사자들은 물론 보는 사람마저도.
그러나 그렇다고 왜 감상적이어야 하는가. 말인즉 이 <Think Tank> 앨범이 위와 같은 멤버 불화건에 의해 필요 이상으로 그늘 지워지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이 앨범은 밴드의 정황상 언필칭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이 보컬리스트 데이먼 알반 외 기타 멤버들과의 의견 불일치를 참지 못해 밖으로 나가버린’ 일종의 이정표적 작품으로 설명될 운명이겠으나, 내용상의 사운드마저 일부 멤버의 성공적 외도 고릴라즈(Gorillaz, 그간 블러가 눈물겹게 누차 시도했던 미국 공략 사업의 빚을 그 몇배로 단번에 가뿐히 상환함으로써 모두를 당황케 했던 알반의 외출용 힙합 프로젝트) 활동의 여파나 느닷없는 팻보이 슬림과의 합작(그러나 그는 법석과는 달리 이번에 단 두곡에서만 프로듀스를 맡았다) 등의 사실만으로 지레 소문처럼 단순히 일렉트로닉 댄스 블러가 되는 일은, 결론적으로, 없었다. 하기야 그랬다면 또 얼마나 (멜로)드라마틱했겠는가마는.
까놓고 말해 이 앨범엔 의외로 놀라운 것이 없다. 변화에 민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단순히 ‘따라쟁이’들에 불과할 뿐인지, 이들 최고의 인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Parklife> 이후의 (트라우마를 짊어져야 했던) 앨범들, 특히 1997년 <Blur> 앨범부터 이들의 움직임이란 일단 표면적으로는 아주 기민한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앨범 이후의 이들의 스타일의 변화를 앨범 때마다 지적해왔다. 그러나 이전까지 브릿팝의 화사한 아이돌인 양 대접받던 그들이 의 아메리칸 인디 록, <13>의 앰비언트 성향 가미 등 잇단 방향 전환으로 모험적이어서 위험하다고들 했던 그 순간마다 희한하게도 <Song2>나 <Coffee + TV> 등 싱글 히트를 어떻게든 내놓는 것을 보아온 사람이라면 <Think Tank>가 내용상 얼마만큼 좌회전이 ‘아닌지’, 뿐만 아니라 맘만 먹으면 앞서 언급된 앨범들보다 훨씬 더 많은 싱글을 내놓을 수 있는 음반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욕이 아니라 그것은 이 앨범 최고의 미덕일 수 있다.
사실 들어보면 이 앨범을 좋아할 이유는 많다. 예컨대 누가 봐도 싱글감이고 또 보란 듯 첫 싱글이 된 <Out Of Time>을 비롯해 <Sweet Song> <On The Way To The Club> 등 그간 과소평가돼온 데이먼의, 멜로디를 구사할 줄 아는 ‘가수’로서의 면모가 아마도 블러의 앨범 중 가장 미드템포적일 이 작품에서 십분 발휘되는 것은 필히 주목할 만한 장면이다. 문제라면 이것이 밴드 최초로 내부적 균열이 표면화된 앨범이란 점, 따라서 아직 콕슨의 탈퇴가 확정되지 않은 지금 상태에서 앞으로의 방향을 이 앨범으로부터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점 정도일까. 아니, 이들의 지금까지의 모든 앨범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무슨 짓을 하건 그 결과물보다는 행위자인 블러라는 주어에 구애되고야마는 저간의 수용 행태가 역시 근본적인 장애인지도 모른다. 이들의 음악에서 이들의 캐릭터는 언제나 존재감이 너무 크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Think Tank>는 욕먹을 앨범이 아니지만 문제작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생각만큼은’. 그 점을 유념하는 것이 어쩌면 post- <Parklife>에 가장 걸맞은 스타일 믹스를 보여주는 이 앨범에 대한 합당한, 그리고 모두가 오해하지 않는 예우일 것이다.성문영/ 팝음악애호가 montypyth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