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Letter 1995년, 감독 이와이 순지 출연 나카야마 미호
HBO 5월13일(일) 밤 8시
세상에 나와 같은 얼굴의 다른 사람이 있다면? <러브레터>는 아주 간단한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 영화다. 한 배우가 1인2역을 맡고 있는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같은’ 이에 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는 이미 세상에 없는, 상실의 인간이라는 점. <러브레터>는 모든 이의 숨기고픈, 그리고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기억의 먼지를 털어내는 작품이다. “오겡키데스카”라는 이 영화의 대사는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하지만 늘 머릿속 어딘가에 살아숨쉬고 있는 옛사랑의 상처를 들춰내는 마법의 주문이다.
히로코는 죽은 연인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알고보니 발신인이 연인과 동명이인이었던 것. 히로코는 죽은 애인과 중학교 동창이기도 했던 이츠키와 알게 된다. 이름이 같아서 히로코의 애인과 남다른 추억이 많은 이츠키는 히로코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옛 추억을 하나둘 떠올리게 된다. 이츠키가 그렇게 사춘기의 남자친구의 기억에 가 닿는 동안, 히로코는 이츠키와의 교신을 통해 점차 사랑의 상처에서 회복되어간다. 애인이 사고로 죽은 산에 오른 히로코는 그에게 절절한 연서를 띄운다. 편지가 아닌 애절한 목소리로. 이와이 순지 감독은 <러브레터>로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신세대 연출자라는 평가를 확고히 했다. ‘MTV세대’를 자임하는 이와이 순지 감독은 <러브레터>에서 자신만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대사들은 생기발랄하며 화면은 CF장면처럼 명징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순정만화 같은 서정성은 영화 곳곳에 살아숨쉬고 있다. 평론가 요모다 이누히코는 “키에슬로프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종교적인 것을 제거하고 교묘하게 재구성한 작품”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