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매트릭스>의 세계에 기꺼이 빠져들 준비를 하고 있는 이 와중에도, 한쪽에서는 그에 저항하는 혹은 순응하면서도 외도를 생각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류라는 것이 있으면, 그에 대한 반발은 어느 상황에서나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비주류를 이끌고 있는 많은 할리우드영화 중에서도, <터미네이터3>는 가히 발군이라고 할 만하다. 하긴 대표적인 할리우드 프랜차이즈인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언제부터 비주류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말은 없는 것도 사실. 하지만 분명 제임스 카메론이 빠진 <터미네이터3>가 <매트릭스>의 다음 자리를 노리는 도전자의 처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경쟁상대라고 할 수 있는 <헐크> <미녀 삼총사2> 등에 비해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새로운 <터미네이터3>의 개봉을 앞두고 색다른 논란이 시작되어, 할리우드와 인터넷을 강타하고 있다. 그 시발점은 7월2일로 예정된 영화의 개봉과 함께 <터미네이터2: Extreme> DVD 타이틀이 출시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Ultimate’판까지 나온 마당에 <터미네이터2>의 DVD가 또다시 출시된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상황은 그지 간단하지 않다.
<터미네이터3>의 동시에 출시될 <터미네이터2: Extreme> DVD.
이번에 출시되는 <터미네이터2: Extreme>이 기존 DVD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특성이란 타이틀에 포함된 두장의 디스크 중 한장이 이른바 HD(고화질, High Definition) DVD로 작성되었다는 사실. 제작사인 아티잔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터미네이터2: Extreme>의 HD-DVD는 보통 DVD보다 약 3.5배 좋은 화질을 보여준다고 한다. 아티잔엔터테인먼트는 <터미네이터2: Extreme>의 출시를 “고객의 요구가 점점 복잡다단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선도적인 시도”라고 스스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문제는 이런 HD-DVD를 보기 위해서는 이용자들이 특별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 일단은 DVD롬을 사용하고 윈도XP가 탑재된 PC에서 윈도 미디어의 최신 버전을 사용해야만, 모니터를 통한 감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당장 DVD롬을 통해 모니터로 보기 위해 <터미네이터2: Extreme>을 볼 이용자들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 그보다는 시장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DVD 이용자들이 그 DVD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게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출시된 DVD들의 경우, 평균적인 TV의 화질에 맞추어져 있어 HD-DVD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에 HD-TV를 구입해놓고 있다고 하더라도, HD-DVD 플레이어가 없이는 그에 맞는 DVD 타이틀을 볼 수 없는 것.
그런 의미에서 보면 <터미네이터2: Extreme>의 경우도, 진정한 의미의 HD-DVD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다. 현재 업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HD-DVD는 이번에 아티잔과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함께 선보인 ‘화질이 개선된 DVD롬’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HD-TV의 고화질에 걸맞은 영상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지금의 DVD보다는 훨씬 저장용량이 큰 새로운 디스크가 개발되어야 하는데, 그에 대한 업계 내의 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인 것.
올 여름 시장의 2인자를 노리는 <터미네이터3>의 한 장면.
<터미네이터3> 공식 홈페이지.
지금 관련 업계는 Blu-lay 디스크 계열과 Advanced Optical 디스크 계열이라는 큰 두 가지 표준이 주도권 경쟁을 하는 중이다. Blu-lay의 경우 소니가 중심이 되어 개발된 표준으로 약 27GB(현재의 DVD는 약 4.7GB)의 엄청난 저장용량을 자랑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DVD 타이틀 제작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파나소닉, 필립스, 파이오니어, LG, 삼성전자 등이 이 진영에 참여한 업체들.
한편 Advanced Optical 디스크의 경우, 약 15GB의 저장용량을 가지고 있지만 기존 생산설비로 HD-DVD 타이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관련 업체들을 유혹하고 있다. NEC, 도시바가 이 진영을 이끌고 있는 상태. 이런 두 가지 주요한 표준 후보말고도, 현재의 DVD 플레이어를 이용하되 압축기술을 발전시켜 고화질을 만들어내는 HD-DVD-9이라는 표준도 경쟁구도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이 HD-DVD-9의 장점에 대해서 워너브러더스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을 상대로 열심히 설득작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그리 달가운 것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혹 표준에 대한 합의에 실패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니는 일본 시장에서 자사 방식의 HD-DVD 플레이어를 이미 출시한 상태다.
물론 서로 다른 표준을 주장하던 진영들이 한동안 경쟁을 하다가, 막판에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던 DVD와 비슷한 양상으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기는 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인터넷에는 HD-DVD의 표준을 단일화하라고 주장하는 웹사이트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일반 관객이 더이상 과거처럼 사태를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 그런 의미에서 향후에 HD-TV의 확산과 HD-DVD의 표준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자신이 열렬한 DVD 수집광이라 엄청난 돈을 DVD에 쏟아붓고 있는 경우라면, 시선이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이철민
‘HD-DVD: 단일 표준’ 사이트 : http://www.dvdsite.org
‘HD-DVD의 모든 것’ 사이트 : http://www.hddvd.org
<터미네이터3> 공식 홈페이지 : http://www.terminator3.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