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감독 석래명 출연 이승현
EBS 5월12일(토) 낮 12시
한국 청춘영화, 하면 어떤 작품이 먼저 떠오를까. 아마도 197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얄개’ 시리즈를 기억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고교생의 장난기와 젊음의 생동하는 기운을 내포한 이 시리즈는 이른바 ‘하이틴’영화로 불리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승현과 김정훈,
강주희 등의 배우가 스타급 배우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얄개 시리즈의 공로였다. 얄개 시리즈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일심동체가
되어 온정을 나누고 심지어 외국인 교사마저 ‘화합’의 대열에 동참하게끔 유도하면서 한없는 낙관주의를 표방했다. 얄개 시리즈는 <얄개행진곡>
<여고얄개> <우리들의 고교시대> 등으로 이어졌다. 철없는 고교생들의 꿈많은 시절을 다룬 이 시리즈는 시대적으로 혼탁한
당시 정치상황에 비춰보건대, 사춘기적 순수성으로의 회귀를 승부수로 삼았던 것 같다. <고교얄개>는 당시 20만 관객을 웃도는
흥행을 기록하면서 이후 하이틴영화 붐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영화 <고교얄개>는 조흔파의 베스트셀러 <얄개전>이 원작이다. 나두수는 고교 1년생으로 온갖 사건을 일으키는 말썽꾸러기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는 달리 따뜻한 우정을 간직하고 있다. 급우인 호철이 어려운 형편으로 고생하자 두수는 친구를 도우려고 남몰래
노력한다. 이 와중에 오히려 사고를 당한 두수는 호철과의 우정을 재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학교에 새로 부임한 국어 교사와 두수 누나의
연애는 양념 같은 곁가지.
석래명 감독은 1970년대의 대표적인 흥행감독이다. 얄개 시리즈 외에도 <고교 꺼꾸리군 장다리군>(1977) 등의 히트작을 계속
발표함으로써 석래명 감독은 국내 하이틴영화의 일인자로 각광받았다. 석래명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라면 재치있는 대사와 상황설정을 들 수 있다.
<고교얄개>에서도 비슷한데 외국인 교장이 어눌한 한국어로 주인공을 “두수 학생?”이라고 부른다든가 작문시간에 유행가 가사를 읊조리는
학생의 행태를 보노라면 웃음을 참기 힘들다. 기발한 대사와 함께, 배우의 몸동작을 활용하면서 슬랩스틱 코미디를 곁들이는 방식으로 석래명
감독은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공감할 수 있는 대중영화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고교얄개>가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일종의 무뇌아적인 대사들로 현실의 암담함을 간접적으로 공격한 <바보들의 행진>(1975)의 하길종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비판섞인 글을 발표함으로써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고교얄개>를 통해 당시 국내 청춘영화가 어떤
경로를 거쳐 발전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될 것이다. 국내에선 10대영화가 일찌감치 하나의 조류로 형성되었던 셈이니 말이다. 혹독한 검열이나
소재 제한 등 영화외적인 요인 때문에 생긴 ‘돌연변이’ 같은 현상일 수도 있지만 이같은 움직임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할리우드가 10대 스타들에 눈돌리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브랫팩’이라는 배우군단을 발굴한 1980년대 초반 무렵이었음을 상기해봐도 당시
한국영화의 하이틴영화 붐은 시기상으로 한발 앞섰던 영화적 움직임이라고 말해도 좋을 성 싶다.
김의찬|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