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볼거리, 희미한 줄거리
총알 막아내고 하늘을 날고, 그래픽 화려함 더해졌지만 진행 더디고 기발함 떨어져 이야기·액션 따로노는 느낌
<매트릭스>의 속편 <매트릭스 2 리로디드>가 15일부터 23일까지 세계 39개국에서 동시 개봉한다.(한국 개봉 22일) 99년 개봉한 <매트릭스>는 제작비 6700만달러를 들여 5억2천만달러를 벌어들였고, 정지상태에서 화면을 360도 회전시키는 연출 등 이후 영상매체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했다.예산을 두배로 늘려 1억2700만달러(3편인 <매트릭스 3 레볼루션>까지 합하면 3억달러)로 4년 만에 내놓은 속편이 어떤 모습일지, 당연히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지난 12일 언론시사회에서 선보인 <매트릭스 2 리로디드>는 액션의 물량면에선 전편을 압도한다. 속편은 으레 그럴 것이라는 기대를 가중치로 적용해도 그 선을 넘어선다. 그럼 테크놀로지와 철학을 치밀하게 엮어 구축해낸 이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전편의 역동감을 이어가며 펼쳐지는가. 여기엔 쉽게 답하기 힘든 변수가 하나 있다. <매트릭스 2…>는 전편에서 이미 설명된 전제들을 진전시키지 않고서 전제의 디테일들을 부연설명하다가 끝날 무렵에 그 전제를 뒤흔든다. 막 머리에 의문부호가 생길 때, ‘3편으로 이어진다’는 자막을 달고는 무 자르듯 영화를 싹둑 잘라버린다.(3편은 올해 11월에 개봉한다.) 2편만 놓고 보면 이야기의 진전이 더디고 긴장감이나 상상력의 기발함도 전편보다 떨어지지만, 3편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부터 100년쯤 지난 미래에, 기계가 인간을 유리관 안에 넣어 사육하면서 인간의 의식을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 프로그램에 연결시켜 허구 속에 살게 한다는 설정은 전편과 같다. 2편은 유리관과 매트릭스를 탈출한 인간들이 실제 세계에 건설한 저항군 본부 ‘시온’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시온은 기계들에게 위치가 발각돼 곧 공격당할 위기에 놓인다. 전편에서 ‘초인적 힘을 가진 이가 나타나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예언 속의 그 인물로 확인된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 트리니티(캐리-앤 모스)와 함께 시온을 구하기 위해 다시 매트릭스로 들어간다.
더 화려한 스펙터클을 위해 2편은, 매트릭스 프로그램의 구속력에 맞서는 네오의 능력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매트릭스 안에서 네오는 수퍼맨처럼 하늘을 날고, 한 손을 뻗어 날아오는 총알을 정지시킨다. 전편에서 네오의 숙적이었던 ‘에이전트’(해커를 막는 시스템의 프로그램) 스미스는 시스템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를 수없이 복제하며 네오에게 복수를 해온다. 2편은 또 스미스처럼, 시스템의 삭제명령을 거부한 채 도망다니는 프로그램을 여러 개 등장시킨다. 이 프로그램들은 미모의 팜므파탈(모니카 벨루치), 유럽의 세련된 쾌락주의자, 동양인 열쇠공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와 영화의 잔재미를 보태며 네오 일행이 시스템 본부를 찾는 데에 가이드 역할을 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프로그램이 자기 의지로 시스템을 거부하다니. 또 네오의 액션이 황당무계해지는 건 실감에 의존하는, <매트릭스>적 액션의 묘미와는 다른 것 아닌가. 전편에선 가상현실과 현실의 구별이 명쾌했다. 그 구별을 조금씩 드러내는 이야기와, 거기 맞춰 점차 업그레이드되는 액션의 절묘한 조화가 전편의 매력이었다. 거기선 주체인 인간과, 시스템의 명령에 불과한 프로그램이 분명하게 구별됐다. 2편에선 주체와 프로그램 사이에 혼란이 생긴다.
감독 워쇼스키 형제는 전편에서 정교하게 구축한 가상현실과 현실의 경계선을 조금씩 허문다.(네오의 황당한 액션도 그런 의도라면 아귀가 맞을 수 있다.) 그게 철학적인 문제제기인지, 아니면 경계선의 단순한 위치 이동인지 2편까지는 불분명하다. 여하튼 그 선을 허무는 과정에서, 이야기와 액션이 전편처럼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따로 논다. 워쇼스키 형제는 전편을 안전하게 확대재생산하는 길을 버리고 모험에 나선다. 그게 성공인지 아닌지, 3편을 보기 전에 단정하긴 힘들 듯하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