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쓴 편지는 잉크가 얼룩졌었다,/ 하지만 대나무 벽은 얇다, 그리고 안개가 계속 누설되지./ 이 추운 산 위에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아침이면, 갈대 줄기쯤이야 사라질 수 있다.’(1982년작 ‘겨울편지’ 중 첫연)
2000년 벽두, 베트남 소설가 바오닌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이루어진 민족문학 작가회의 공식방문단 일원으로 베트남을 찾았던 나는 베트남 문인들의 과분한 환대와 놀라운 관용-포용력, 그리고 우리의 20년 전을 닮은, 독재자 없이 닮은 하노이 거리와 옥빛 안온미의 극치에 달한 하롱 베이 풍광에 넋을 빼앗기는 와중에도 영어로 번역된 휴틴 베트남 작가동맹 위원장의 시를 열편 남짓 읽으며 아픈 감동을 받았었다. 휴틴은 탱크 운전병으로 베트남-미국전쟁에 참전, 대령까지 진급한 바 있는 역전의 용사다.
베트남쪽의 공식 답방은 2년 뒤 이뤄졌고, 바오닌이 다시 오지 않은 게 좀 서운했지만, 대부분 베트남 문인들은 어제, 멀리 헤어진 친구 혹은 친척 어른들처럼, 낯익은 만큼 반가웠고, 휴틴은 대표자답게 당신 베트남 방문단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반가워해주었다. 그때 언뜻 생각이 들어, 제일 만만한 후배 문학동네 사장 강태형한테 긴급 연락, 출판 계약을 하고 펴내게 된 것이 이 시집이다.
이 시집에 어려운 시는 없다. 그리고 얼핏, 놀라운 시도 없다. (농촌적) 서정은 분명 우리에게 낯익고, 전쟁의 상처 또한 왜곡된 상태로나마 낯설지 않다. 놀라운 것은 빼어난 서정과 전쟁의 지루하고 끔찍한 일상(혹은 기억)이 서로를 왜곡하기는커녕 공존을 너머 상호 ‘절대명징’화하는 대목이다.
‘바람을 가로막으며, 자줏빛 뿌리의 나무가 몸을 떤다./ 곡식 종자들이 땅 밑에서 오그라든다./ 동지들이 임무 수행 중인 날들이면/ 그들이 보고 싶다, 그러나…. 여벌 담요가 있다.’(위의 시 중 3연)
절대 열세의 참혹한 반제국주의 100년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것의 미학적 경과를 알겠다. 그리고 왜 승리해야 하는가, 그 의미도 알겠다. 참으로 뼈아픈 감동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 승리가, 피에 젖은 손을 반성한다는 점이다. ‘하늘이여, 뜸부기들은 다르게 운다.’(1889년작 ‘뜸부기 운다’ 중 후렴격). 곧 나온다. 김정환/시인 · 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