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추억마저 경이롭다
요즘, 심심하다. 심심한 이유는 뭘 해도 시시하기 때문이다. 뭘 봐도 시시하고 뭘 사도 시시하고 누굴 만나도 시시하기 때문이다. 이 이유는 내가 질풍노도 스펙터클 즐거운 청춘 시절 다 보내고 이제 바야흐로 먹고살기에만도 급급한 아저씨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심심하게 먹고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남은 인생이 어쩐지 ‘여생’ 같다. 말 그대로 남은 인생이니 여생이 맞다. 나이 마흔도 안 돼서 벌써 여생이란 생각을 하다니 퍽 억울해진다. 세상이 심심해지면 불경기가 오래 지속된다. 사람들은 불경기니까 재미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재미있는 일이 없으니까 불경기가 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비틀스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불경기를 상상할 수 있는가. 서양에서는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제프 벡이 기타로 불을 뿜고 한반도에서는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트로이카가 한창 물오른 연기를 보여주는 가운데 ‘다 시시하고 매일 심심하고 어딜 가도 시큰둥하고 뭘 해도 심드렁해요’라고 말하는 청춘이 있겠는가 말이다. 무엇보다 비틀스가 있었더라면 말이다.
지나간 청춘이 다시 올 수 없듯이 비틀스는 다시 오지 않는다. 남자 네명이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를 뿐인데 전세계 젊은이들이 열광을 하고 공연장에 운집하고 감격의 오열을 하다가 혼절하는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말하자면 인류는 이제 여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낭만과 열정의 시대는 갔고 새로 나온 10시간이 넘는 비틀스 다큐멘터리 DVD 박스세트는 복지연금 같은 것이다. 비틀스의 역사를 담은 DVD <Anthology DVD’s>는 1995년 11월 처음 TV시리즈로 공개되었고, 이듬해에는 비디오세트로 선보여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0시간 분량의 오리지널 <Anthology> 시리즈를 스테레오/서라운드 사운드로 재구성한 DVD 4매와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미공개 장면들을 담은 81분 분량의 스페셜 피처 DVD 1매로 구성되었다(DTS 5.1 서라운드, 돌비디지털 5.1 서라운드, PCM 스테레오).
DVD 제작을 위해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개인적인 만남을 가진 세 멤버들이 <Free As A Bird>와 <Real Love>를 녹음하는 모습과 예전의 모습을 회상하는 장면 등 처음 공개되는 내용들도 있다. 또한 5.1 서라운드 사운드로 리믹스된 <Real Love>의 음악비디오도 최초로 포함되었다. 아쉬운 점은 한글자막이 없다는 것. 이 엄청난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은 타임머신을 타고 전설의 나라로 여행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LP에서 CD로, 그리고 DVD로 미디어는 진화한다. 미디어가 진화하는 이유는 비틀스를 실제로 더이상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미디어는 선명해진다. 그 시절, 추억마저 경이롭다. 김형태/ 궁극종합예술가 kongtem@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