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세월의 유구는 그 위용대로 어떤 곡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자적 제 갈 길을 걸었겠고, 우리는 그 무심한 세월에 아무렇게나 놓이고 던져진 채 까맣게 속태우며 한껏 무뎌지고 늙어져왔다.
세월이 우리에게 안긴 것이 어찌 기쁨뿐이겠는가? 고단한 세상살이의 위로됨을 위해 기억의 머리에 잊음의 시혜를 얹어놓았을지언정 또 제 아무리 각인된 아픔의 생채기를 추억이라는 미학으로 거듭 세워본들 분명한 것은 고통의 본토는 고통이듯, 아픔의 본디도 아픔인 것이다. 그 어느 누가 그 괴로움 속 자신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세월의 극변함의 격랑에도 아랑곳없이, 태초 자신으로 일관되게 임할 때, 그들은 시류에 맞게 진화하지 못하고 도태한 열성인자 내지는 돌연변이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일 수도 있는데 그러나 그들이 이런 것까지는 몰랐으리라! 영화는 그런 변종 변이나 사회적응의 열성인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꽃피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 인고와 시련의 세월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감독들은….
요즘의 내 기쁨은 내 아름다운 동생 오상훈이 드디어 10년간의 참담함을 딛고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양대 메이저의 한축인 CJ의 첫 자체 제작인 <위대한 유산>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말이다. 레디고를 부르기까지 그가 겪어온 마음 고생…. 때로는 시나리오가, 때로는 제작비 조달의 어려움이, 때로는 배우 캐스팅에 실패해서…. 그의 한순간 희망섞인 얼굴에 우린 기뻐 날뛰었고, 제작의 좌절 앞에 쓴 소주를 마실 땐 씨알도 안 먹히는 위로와 함께 통음하길 몇해, 실패로 내공을 키워나가던 그에게 이제야 그 어둠이 걷혔다니, 그래서 세상은 살아볼 만한 것이리라…. 37살의 나이에 지금껏 자신이 벌어본 돈이 1천만원이 채 안 된다며 껄걸거리는 그 웃음엔 그 어떤 자학도 비굴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학 다닐 때 선배따라 난생처음 여자 있는 술집 갔다가 아가씨가 등록금 때문에 가게 나온다는 말에 자기 동록금을 성큼 줘버릴 정도면 말 다한 거 아니겠는가!(그 정도면 뭔가 바랄 만도 한데 그것도 아니었다 하니, 참…) 그뿐인가? 우리 패거리의 형뻘 되는 나와 송해성 감독은 물론 10여년을 사귀어온 엄마 같은 애인 홍인실에게 막무가내로 돈을 뺏어가 없는 후배들 찾아다니며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용돈까지 챙겨주는 그 밉살스런 인정머리에 두손두발 다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굶어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감독에 데뷔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앞에 잠깐 언급했듯 대학 때 만나 지금껏 사귀어온 그의 애인의 헌신과 사랑 때문인데 그 여인네, 말 그대로 자기 남정네를 챙기고 보살피는 수준이 가히 사임당급이다(우린 그녀를 홍사임당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질긴 연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상대방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는 쌍방간의 연민이, 백년해로할 수 있는 남녀간 사랑의 근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저 불쌍한 놈을 두고 내가 어찌…. ’ ‘ 이 무기력한 나를 보고도 늘 방실거리는 저 속없는 년을 두고 내가 어떻게 ….’ 그래서 못 헤어지는 것 같다. 고로 나도 앞으로 맘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불쌍하게 보여서 죽어도 안 떨어져야겠다고 굳게 마음도 먹어보고…. 양손에 도넛을 잔뜩 사든 배우 김승우와 함께 촬영장을 찾던 날, 살이 엄청 빠져 몰라보게 예뻐진 김선아와 귀여운 재간둥이 임창정과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는 오상훈에게선 신인감독들에게 찾아볼 수 없는 넉넉한 여유가 느껴졌고, 그것은 곧 성공예감이었다. 오 감독님! 부디 바라거니와 영화의 성공도 성공이지만, 그 귀하고 고운 사랑도 해피엔딩으로 결실 맺기를….김해곤/ <파이란> <블루> 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