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는 두편의 외국어영화 <그녀에게>(사진)와 <이 투 마마>를 각본상 후보로 올렸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스페인어 영화 최초로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섬세한 번역이 없었다면, 보수적인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낯선 언어의 영화가 지닌 매력을 온전히 전달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의 영어 번역을 맡았던 다이드레 매클로스키라는 번역가는 “이 작품에서 내 최종 목표는 내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캐릭터들의 목소리를 잡아내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이 말은 곧 외화 번역 작업이 가진 본질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국내에서 <타이타닉> 등을 번역한 조상구씨도 이를 잘 아는 번역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번역에 들어가기 전 영화 대본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주연배우를 따라 직접 연기를 해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 그의 자막은 등장인물의 성격을 생생하게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막작업은 일본의 하이쿠에 비유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시조처럼 글자 수에 따른 운율을 중시하는 하이쿠 문학은, 제한된 수의 단어로 가장 함축적이면서 효과적인 표현이 구사될 때 예술적 가치를 발휘한다. 자막작업도 마찬가지다. 국내의 외화 자막은 한줄에 여덟자씩 두줄로 넣는 것이 관례이고, 외국의 영화 자막은 최대 40개의 글자가 역시 두줄에 들어간다. 결국 자막은 버려야 할 부분을 과감히 증류시키고 남은 물질에 속한다. 어떤 번역가는 “꼭 크로스퍼즐을 하는 것 같다. 복잡하고 많은 양의 대화를 모두 번역해 담는 건 불가능하므로 내용의 40%는 날아간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의역은 불가피하고, 엄밀히 말해 틀린 번역도 넣는다는 점을 번역가들은 인정한다. 외화번역가 이미도씨는 “외국인들이 웃는 대목에서는 우리 관객도 반드시 웃을 수 있도록 번역해야 한다”는 철칙에 따라 원래 대사와 전혀 상관없는 대사를 재치있게 만들어내곤 했다. 이렇게 본다면 번역은 또 다른 차원의 ‘각색’이다.
감독들이 이러한 자막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면 번역가들의 일도 훨씬 수월해진다. <데미지>를 만들었던 프랑스의 루이 말 감독은 해외 배급시 들어갈 자막을 고려해 87년 <굿바이 칠드런>의 대사를 의도적으로 짧게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감독들은 편집실에서 번역가와 함께 자막을 꼼꼼히 검토하는 쪽을 택한다. 일부 번역가들과 고정적인 관계를 맺는 감독들도 있다. <그녀에게>의 번역가 매클로스키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전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라이브 플래쉬>도 번역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막작업에 공을 들이고 그 결과 관객이 무난히 영화를 수용한다 한들 자막의 단점과 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새로운 얘깃거리는 아니다. 스탠리 큐브릭은 자막이 비주얼에 ‘손상’을 입힌다는 이유로 더빙을 선호했다. 미국 내 배급업자들은 현란한 비주얼로 승부하는 액션영화나 글 읽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아이들이 찾는 가족영화에 자막은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물론 자막의 가장 큰 대안으로 여겨지는 더빙의 단점들도 유명하다. 관객은 익숙한 배우에게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영 낯설다거나 배우의 입모양과 말이 맞지 않아 어색함을 느낀 경험을 갖고 있다. 그래서 미라맥스는 양쪽의 단점을 보완하고 좀더 많은 관객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로베르토 베니니의 <피노키오>를 더빙 프린트와 자막 프린트로 동시 배급하기도 했다.
외화번역가들은 그들의 위치가 중요하며 유효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말하는 가장 훌륭한 자막은, “영화의 분위기와 리듬에 완전히 일치해서 관객에게 뭔가를 읽는다는 의식조차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작업의 성취감은 한 번역가의 말을 빌리면 ‘무명성’에 있다. “그리고 그건, 자막을 번역한 내가 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이 그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얻는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