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 실화를 다룬 <살인의 추억>은 연극 <날 보러와요>의 판권을 얻어 2년8개월 만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중 1년은 시나리오를 쓰는 데, 또 1년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나머지 8개월은 촬영 및 후반작업에 소요됐다. 심성보(32)씨는 스탭 가운데 제일 먼저 팀에 합류하여 각본 작업을 돕는 한편, 촬영에 필요한 장소를 물색하고 현장에서는 딱딱이를 쳤다. 꼬박 3년을 <살인의 추억>과 함께한 그는 이제 그 지난한 ‘추억’과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영상원 영화과 1기생이었던 그는 동기생인 조의석 감독의 소개로 봉준호 감독과 조우했다. <일단 뛰어>로 그보다 먼저 충무로에 데뷔한 조의석 감독은 그 전에 봉 감독 밑에서 <플란다스의 개> 촬영부로 일한 바 있다. 봉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심성보씨는 그간 작업했던 단편영화와 손질한 단편 시나리오를 건넸다. 그로부터 보름 뒤에 봉 감독으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고, 지금에 이른 셈이다.
영상원에 재학하기 전, 그는 불어를 전공하던 외대생이었다. 영화를 ‘공부’하기로 맘먹은 것은 졸업반이 되면서였다. 이왕 불어과를 나왔으니, 영화를 공부하는 장소도 파리로 정하려던 차에, 영상원 개원 소식이 들렸다. 시험은 모두 세번, 자유로운 연상작용에 따른 글쓰기 실력을 점검받은 뒤 그는 영화과 학생이 되었다. 함께 수학한 조의석, 정재은 등이 먼저 데뷔를 했고, 그는 근근이 졸업 기한을 맞출 수 있었다. 별로 열심히 해본 기억이 없는 학교생활 내내 낙제생이라는 기분을 떨칠 수 없던 그는 봉 감독을 만나 짜임새 있는 삶 꾸리기를 시작한다. 하루하루 노동하는 자세로 영화에 임하는 봉 감독으로 하여금, 심성보씨는 가장 밀도있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1년간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봉 감독과 그가 가진 미팅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다. 별로 말이 없는 두 사람은 한번 가진 미팅도 그닥 오래 끌 줄 몰랐다. 연극에서는 조연이었던 ‘박 형사’(송강호)의 비중을 늘리고, 극본상의 자잘한 연애담을 빼면서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필요하자 심성보씨는 바빠졌다. 디테일한 소재들을 모아 사건담을 정리하면서, 살인자의 입장에서 좀더 선정적으로 극을 전개하길 기대했던 그와 달리 감독은 살인자를 최대한 보여주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결국은 감독이 옳았다고 그는 생각한다. 현장에서 감독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야 할 사람인 것이다. 그게 옳은 거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진사가 겪었던 각종 오해(사진기가 영혼을 앗아갈 것이다)와 박해를 다룬 그의 단편시나리오 <사진기의 유래>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듯하다. <살인의 추억> 현장에서 그는 몇번의 지우기와 그리기를 한 끝에 입봉작의 주제를 정했다. 연애가 그의 첫 화두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싸이더스에서 그의 데뷔를 맡기로 했다. 심성보씨의 연애담은 어떤 것일까.글 심지현·사진 조석환
프로필
1972년생한국외국어대 불어학과 91학번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95학번16mm 단편 <여우비>(7분), 단편시나리오 <사진기의 유래>장편 <살인의 추억>에서 각본 및 스크립터, 장소 헌팅 현재 데뷔작 구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