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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한 경찰영화 <와일드 카드>
2003-05-15

복잡하지 않다

지난 1월 <와일드 카드> 촬영 현장에 갔을 때, 김유진 감독은 이 영화를 ‘명쾌한 영화’라고 한마디로 압축했다. 완성된 영화는 말 그대로 ‘명쾌’했다. 쉽고 선명한 이야기가, 시간 순서를 따라가는 간단명료한 어법으로 전개된다. 관객에게 요구하는 감정이나 관객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일선 경찰의 애환, 동지애, 악한에 대한 분노와 정의감으로 영화를 끌고가면서 양념으로 여러 건달들의 개인기와 해프닝을 곁들인다. 경찰 내부나 사법구조의 문제 같은 복잡한 건 넘보지 않는다.

일찌감치 스릴러 길 접고

그러면서도 상영시간 내내 긴장감을 끌고간다. 또 분노와 통쾌감, 웃음과 약간의 찡함 등등의, 영화가 관객에게 의도한 정서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그때마다 매듭지으면서 넘어간다. 그 결과 <와일드 카드>는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명쾌한’ 경찰영화가 됐다.

영화의 악한은 서울 강남 일대에서 활동하는 퍽치기 일당이다.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을 아무나 찍어 다짜고짜 야구공만한 쇠구슬로 머리를 때려 죽인다. 그러고는 가방을 뺏아간다. 퍽치기 범죄에, 지문을 감추는 것 외에 특별한 지능이 요구되지는 않는다. 또 영화는 처음부터 범인을 보여준다. 그렇게 일찌감치 스릴러의 길을 접고서 강남서 강력반 형사들의 생활을 찾아간다. 형사들은 퍽치기 일당을 잡을 때까지 무한정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단순무식한 퍽치기를 잡기 위한 수사방법도 단순무식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단순무식한 무한정 잠복근무를, 형사들의 일상을 중계하는 계기로 삼는다.

다들 며칠씩 집에 못 가고, 어떤 집은 형사가 없는 사이에 일과처럼 부인에게 협박전화가 걸려오고, 어떤 형사는 동료가 칼에 찔려 죽은 걸 본 뒤로 칼만 보면 공포에 질리고…. 돋보이는 건, 그 사연 하나하나보다 사연을 배치하고 전환하는 타이밍, 즉 호흡조절의 유연함이다. 영화의 큰 줄기는 퍽치기 일당의 범죄행각이다. 범죄 장면을, 관객의 섬뜩함과 분노를 유발할 만큼만 사실적으로 묘사하고는 바로 다른 에피소드로 전환해 누그러뜨린다. 총각형사 방제수(양동근)와 시경 감식반의 여경 강나나(한채영) 사이에 벌어지는 연애감정의 밀고당기기, 중견 베테랑 오영달 형사(정진영)가 망원으로 동원한 건달 도상춘의 맛깔난 사투리와 개인기는 관객 정서의 완급을 조절하는 데에 요긴하게 쓰인다.

<와일드 카드>는 무엇보다 작품이 담으려는 여러 정서를 적절하게 나눠 배분하고, 전체적인 리듬을 조율하는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다. 정진영, 양동근, 기주봉 등의 연기도 영화 속에 잘 녹아들지만 모두 긍정적으로 그려진 단선적인 캐릭터이다. 그 점에서 같은 경찰영화인 <공공의 적>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이중 인격의 강철중 형사와 대조적이다.

<공공의 적>과 대조적

영화 전체를 봐도 <공공의 적>에서 경찰과 범인의 대결이 관객의 신경을 극한까지 곤두서게 하는 데에 반해 <와일드 카드>는 그 전에 멈춰선다. <와일드 카드>는 할 말만 하고 경찰 내부 비리 등에 대해선 언급도 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훼손시키지 않는 드문 경우다.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제목처럼 트럼프에서 아무 패나 될 수 있는 ‘와일드 카드’인 셈이다. 16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