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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어댑테이션>
2003-05-09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쓰지?”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쓰지 커피를 마셔볼까. 마셔도 안 풀리네. 베스트셀러 도서의 각색을 의뢰받은 시나리오 작가가, 끙끙대다가 각색을 포기하고는 끙끙대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각색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이상한 영화. 이상하긴 하지만,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로 놓고 보면 그다지 새롭진 않은 것 같고. 대인관계에 소심하고, 창작엔 엄격한 이 작가가 악몽에 시달리는 게 우습지만 특별한 아이러니가 있는 것 같진 않고. 왜, 우디 앨런식 캐릭터 코미디가 상투적으로 보일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통상적으로 써봐 이런 건 좋고, 이런 건 아쉽고 하는 식으로 그런데 그게 구별이 가나 좋은 그 점이 바로 아쉽고, 아쉬운 그 점 때문에 좋을 수도 있는데. 또 좋은 점도 아쉬운 점도 다 선명하지 않을 땐 억지로 말을 만들어 대다수 영화가 그럴 텐데 그 동안은 어떻게 기사를 써왔지 그래. 일단, 줄거리부터 요약하자.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니콜라스 케이지)은, 그가 쓴 <존 말코비치 되기>의 촬영이 한창일 때 다른 주문을 받는다. 베스트셀러인 논픽션 <난초도둑>을 영화로 각색해 달라는 것. 카우프만은 방구석 타자기 앞에 앉지만 각색이 안 풀린다. 뭐라고 쓰지 커피를 마셔볼까. 마셔도 안 풀리네. 통상적으로 써 봐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을 통해 캐릭터를 변화시키고…. 그런데 뻔한 일상에서 도대체 이렇다 할 사건이 벌어지나 책에도 그런 건 없잖아. 억지로 만들어

찰리의 쌍둥이 동생이자 같은 시나리오 작가인 도널드 카우프만(니콜라스 케이지 1인2역)은 그와 반대로 상투성을 겁내지 않고 개연성은 무시한다. (실제 찰리 카우프만은 <존 말코비치 되기>와 이 영화 <어댑테이션>의 시나리오 작가이지만 도널드 카우프만은 허구의 인물이다.) 도널드의 제의로 둘은 <난초도둑>의 작가 수잔 올리안(메릴 스트립)을 미행한다. 한 난초 수집가를 인터뷰하면서 그의 세계를 책으로 쓴 수잔은, 책에서 보인 순수한 열정과 달리 그 수집가와 마약을 하며 밀월을 즐기고 있었다. 미행이 발각되고 추격전이 벌어지고….

줄거리를 요약했으니 이제 무슨 말을 하지 이 영화 좀 뻔뻔하지 않은가 도널드를 전면에 내세운 뒤부터 겁없이 사건을 만들잖아. 그래놓고는 ‘도널드 카우프만’이라는 이름을 공동각색자로 올려놓다니. 영화 만들기에 대한 자조적 풍자 그렇게 보면 재치있는 방법일 수 있지만, 그 사건이 억지스럽고 거기엔 상투적인 재미조차 없지 않나 ‘영화에 관한 영화’가 자족적인 재미를 좇는 건 흠이 될 게 없지만, 이 영화의 자족은 왠지 자위에 가까운 것 같고. 그런데 기사를 이렇게 써도 될까 뻔뻔하지 않은가 9일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