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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
2003-05-09

고향과 순수를 추억하는 따뜻한 동화

“이건, 동화예요.”

물 속에서 카메라가 천천히 헤엄치듯 수몰된 마을의 낮은 담장, 골목, 가게를 비추는 첫 장면부터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그렇게 말을 건다. 하얀 눈 쌓인 산 위에 외따로 서 있는 나무 오두막, 검은 밤하늘에 또렷이 보이는 화성, 털귀마개를 하고 빨간 자전거를 몰고 다니는 시골 우체부…. 영화 속 배경과 인물은 모두 예쁜 동화처럼 사람들을 맞는다. “지치셨나요 잊었던 이곳으로 오세요.”

<화성으로…>는 성공적이었던 데뷔작 <동감>(2000년) 이후 김정권 감독과 작가 장진이 두 번째 만난 작품. 언뜻 보기에 영화는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다. 죽은 아버지가 ‘화성으로 갔다’고 믿는 소녀 소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소년 승재는 꼬박꼬박 대신 답장을 쓴다. “화성엔 아무나 가냐. 대통령, 우주비행사, 그리고 편지 배달해야 하니까 우편배달부나 가지”라던 이 꼬마들의 말처럼 17년이 흐른 뒤에도 승재(신하균)는 우편배달부가 되어 마을을 지키고, 서울로 떠난 소희(김희선) 대신 소희의 할머니를 돌본다. 그러나 소희는 도시의 변화된 삶에 적응했다. 승재와 소희는 짧은 재회를 하지만, 승재에게 그것은 어릴 때부터 쌓아온 애틋한 사랑인 반면 소희에겐 외로움과 고마움과 연민이었을 뿐이다.

신문의 가십란이라면 ‘수몰마을 총각, 서울 간 여자친구에 채이고 비관 자살’이라고 한줄로 정리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는 그것을 따뜻한 판타지로 보듬는다. ‘화성으로 떠난 아들’ 곁으로 가겠다고 어느 밤 조용히 집을 나서는 소희 할머니의 뒷모습이나 자신의 집이 가라앉는다는 사실보다는 마을 이름이 잡지에 나왔다고 좋아하는 순박한 아저씨 등을 비출 때 <화성으로…>는 ‘팬시 멜로물’과는 격이 다른 정서를 품는다. 특히 그 정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물보다 공간이다. 눈 시리게 화면을 채우는 산골마을, 촉촉이 물기 내려앉은 밤 골목, 그리고 승재의 순수한 사랑에 수몰된 마을의 모습을 포개는 순간 가슴 한구석은 싸해져 온다. ‘사랑’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잊고 있었던 고향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고향’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추억 속의 공간일 뿐이다. 또 순수한 시절의 추억을 자극하는 것은 한국 멜로영화에서 낯설지 않은 전략이다. <화성으로…>도 크게는 이 계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현실이라면 정말 상처 받고 상처 주는 관계일 법한 이야기도 승재의 미소 하나 속에 숨어버린다. 하지만 동화란 해결책을 주지는 못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위로함엔 틀림없다. 단순하지만 정직하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응시하는 <화성으로…>에 담긴 위로는 설익은 풍자나 비판보다 호소력이 있다.

착한 웃음을 짓는 것만으로도 승재의 모습인 신하균이나 하얀 눈 속에서 빛나는 김희선은 영화의 이미지 그대로다. 승재의 말썽꾸러기 동생 호걸역으로 나오는 김인권의 액센트 있는 연기도 눈에 띈다. 15일 개봉. 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