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가 뒤틀리는, 그러나 일상의, 폭소
자기처럼 질투심 많은 성격에, 매일 그렇게 남의 그거 보고 있는 거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잖아!/ 그러는 자기는, 그 소심한 성격에 자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걸 알면 또 상처받을 거 아냐!/ …. (중략) 내게 그렇게…. 굵고, 단단했어?/ 그걸 몰라서 물어!(<이크> 소수 송재성 만화, <내. 연. 애. 는. 위. 기. 에. 처. 했. 다. > 중 풍선 속 대사)
이렇게만 보면, 두 사람 사인은 연인이고 불륜관계고, 최소한 한 사람은 자기 직업을 속였다. 그 직업은, 미루어 짐작해서, 산부인과 의사? 아니다. 치질전문의다. 그럼, 무슨 얘기지? 만화는 처음부터 둘 다 남자고, 두 남자는 치질환자와 치질의사 관계고 곧 두 사람은 호모에로틱 관계다. 그리고, ‘그거’는 (여성기가 아니라 남자의 항문이고, 덧붙혀 누구나의 항문이다, 왜냐하면 ‘취향이 좀 색달’라서 치질을 얻은 여자 환자도 등장하고, 그녀는 ‘그게 굵고 좀 딱딱하’냐는, 똥에 대한 치과의사의 질문을 남성기에 대한 질문으로 오해, ‘그 일 치를 때 많이 힘들고 괴로우시죠?’ 하는 질문에 ‘어머머. 아뇨. 힘들기보단 짜릿’했다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항문과 성기의 차이는 뭐지? 똥과, 주인공 하나가 배변 중이므로 더욱, 냄새? 그럼 냄새와 (취)향기의 차이는 뭐지? 그렇게 권위가 뒤틀리면서, 그러나 일상의 폭소가 드러난다. 아나키의 순간이다. 이 작품은(극화, 혹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웃기다’) 만화의 핵심에 가닿고 있다.
같은 책에 실린 윤태호 <스페시알 프로그램> 연작도 일상의 따지고보면 비극적인 권태를, 따지지 않아도 재미있는 의미로 전화하는, 가장 낮은 것에 파괴적인 미학의 총체성을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만화‘예술’의 한 모범이라 할 만하다. 듣기로 <계간 만화 이크>는 1억원(!) 가까운 지원금을 받고 출판되었다. 진지한 토론과 보고, 만화평도 돋보이지만, 돈에 눈먼 외양적 화려함보다는(돈 전달해주는 공무원들 이해시키려면 이런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런 창조적 만화를 더 많이 실을수록 더 밝은 장래를 갖게 되는 것 아닐까 싶다.
위 책의 경위와 전망을 일찍이 내게 귀띔해준, 그리고 실질적으로 산파 역할을 했던 주완수(만화가)는 문패 뒤로 숨었다. 대신 자기 이름으로 위 책을 냈다. 주완수야말로 똥과 음식을 혼동 혹은 혼합하는 미학의 선구자라 할 만한데, 섹스를 좋아하는 뚱뚱한 일본 여자와의 신혼담이지만, 동시에, 위에 언급한 파격적인 ‘만화=폭소’가 닳아지는 살로 무르익는 광경이기도 하다. 모두 부럽다. 성욕, 일탈, 무르익음, 만화, 그 모든 것이…. 내 나이 만 50 직전에…. 김정환/ 시인 · 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