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대박을 터뜨린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가 지난 4월27일 막을 내렸다. 마지막 공연에는 노짱이 관람을 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혹자는 구시렁댈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소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는 세상은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다. 연극 역시 신나고 웃음으로 넘쳐났다. 1989년 동숭아트센타 개관기념으로 첫 공연을 할 때만 해도 사회적 부조리를 신랄하게 헤집던 ‘풍자’가 지금은 ‘개그’로 희화화되어 사람들을 마구마구 그냥 웃게 만든다. 연극을 보러 간 날 명계남, 박철민, 최덕문 등 주연배우들과 조촐하게 맥주을 한잔 마셨다. 모처럼 대학로에서 흥행연극이 나와서 모두들 신나했다. 한편으론 연극판이 옛날 같지 않아서 전반적으론 매우 힘들다는 푸념도 늘어놓았다. 함께한 일행 중 연극 출신의 유명 배우에게 몹시 궁금한 게 있었다. 최민식, 조재현, 송강호, 유오성 등 연극계 출신의 스타 연기자들을 떠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의 고향은 연극인데, 스타가 되고 나서는 왜 연극을 하지 않나요?”
<늘근 도둑 이야기> 첫회 공연 때 수사관으로 문성근이 출연했고, 두 번째 공연 때는 수사관으로 유오성, 박광정이 교체 출연했다. 이번 공연은 극단 차이무와 동숭아트센터가 올 연말까지 이어지는 <生연극시리즈>로 기획한 연극제의 두 번째 작품이었다. 더늙은 도둑 명계남, 덜늙은 도둑 박철민, 수사관 최덕문의 연기는 빛나고 재미있었다. 그동안 연극를 통해 배출된 걸출한 연기자들은 연극계의 희망일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 발전의 큰 견인차였고, 지금은 많은 대중의 스타이며 충무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명계남은 제작자로서 연기자로서 이미 거목이 되었고, 박철민, 최덕문은 선배들의 뒤를 잇는 훌륭한 배우가 될 것을 확신한다. 이처럼 연극과 영화의 만남은 하나의 핏줄로 이어지는 생명체이며,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공동 운명체이다. 언젠가부터 문화권력의 중심이 영화로 급격하게 이동하면서 대학로의 역동적인 현장이 점점 맥을 잃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리들이 들린다. 대학로에서 공급되는 동맥의 한줄이 끊긴다면, 한국영화의 미래도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살인의 추억>이 작품성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낚아채며 충무로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이 영화는 너나 할 것 없이 기대를 모았고, 모두들 정말 잘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이는 봉준호 감독 개인에 대한 기대뿐만이 아니라 한국 영화계 전체를 위한 소원이었다. 가벼운 코미디 일색의 영화들이 흥행의 주류를 이루면서 앞으로 작품성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충무로를 휘감고 있는데, 우리는 <살인의 추억>이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주길 바랐던 것이다. <씨네21> 8주년 기념 행사장에서 배우 이미연이 송강호를 보자마자 달려왔다. “내가 이 영화 홍보팀장인 거 몰랐어? 나중에 한턱 내야 돼! 정말, 축하해!” 많은 영화인들이 스스로 홍보를 자임했고, 이미연의 따뜻한 마음처럼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연극이 원작인 <살인의 추억>은 이처럼 우리에게 소중한 영화이며, 연극과 영화의 만남이 출발한 작은 결실이다.
우리는 앞으로 명계남, 문성근, 최민식, 조재현, 방은진, 송강호, 설경구, 유오성 등 연극 출신 스타들이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기하는 모습들을 보고 싶다. 이들을 영화뿐만이 아니라 대학로에서도 계속 볼 수 있다면, 내일의 스타를 꿈꾸는 많은 연기 지망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며, 그들을 사랑하는 대중은 연극과 영화를 함께 즐기고 기뻐할 것이다. 모 스타 배우가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배들이 먼저 나서서 모범을 보이고, 후배들이 계속해서 연극의 계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앞장선다면 모두가 환영할 일이다. 우리는 하루빨리 그들의 모습을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서 보고 싶다.
<살인의 추억>이 준 희망을 계기로 더이상 한국영화의 위기를 말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그동안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끙끙대오던 작품들을 위해서 더욱 노력할 것이다. 잘 만든 영화는 결코 대중이 외면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된다. 최근 몇년간 급격히 성장한 한국영화는 조정기 국면을 맞이하는 느낌이다. 이것은 위기라 아니라 새로운 성장을 위한 다지기라고 본다.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시대라고 하지만, 갑작스럽게 문화권력의 중심이 영화로 집중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화예술의 모든 장르는 함께 공존해야 하며, 특별히 연극과 영화의 만남은 운명적으로 함께해야 한다. 이승재/ LJ 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