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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초청팀장,이지우
김현정 2003-05-07

" 게스트 오기 전까진 밥도 제때 못 먹었죠 "

한 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지우 팀장의 전화는 열번 가까이 울렸다. 영화제가 시작한 지 나흘째인 월요일에야 처음으로 점심을 먹었다는 그는 잠깐이라도 느긋해질 여유라곤 없었다. 국내와 국외 게스트들을 영화제에 초대하는 초청팀은 게스트가 전주에 발을 딛는 순간까진 결코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부서. 아시아와 유럽에 흩어져 있는 게스트들을 위해 비행스케줄을 짜다보니 “이젠 여행사 직원이 다 됐다”며 한숨을 폭폭 쉬던 이 팀장은 “체하기라도 하면 일을 못할까봐” 함부로 밥도 먹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우가 전주영화제와 연을 맺은 건 4년 전 군산시청 앞에 붙어 있던 자원봉사자 모집 플래카드를 봤을 때였다. 전공인 미생물학을 좋아했지만, 하루종일 실험실에 처박혀 있는 건 참을 수 없었던 그는, 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와 용평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맡았던 영어통역 일이 재미있기도 했다. 집은 충남 서천, 일하는 곳은 전주. 초청팀 선배들은 두 시간 가까이 이동을 해야 하는 탓에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그를 붙잡아 늦게까지 일을 시키고 싶어했다. 그가 전주영화제 초청팀 인턴이 된 건 그처럼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짧은 경험은 3년에 걸친 외국생활로 이어졌다. “초청팀에서 일하다 보니까 일본하고 중국 게스트들은 영어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구요.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친구가 홍콩에 있었거든요. 한국엔 광둥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베이징어랑 광둥어를 둘 다 배워두면 괜찮겠다 싶었죠.”

홍콩과 선전을 오가며 언어도 배우고 아르바이트도 하던 지난해 말, 전주영화제 조직위원회는 메일링 리스트에 올라 있던 사람 모두에게 스탭을 모집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또다시 사소한 우연으로 그는 지원서를 보냈고, 다시 전주에 올 수 있었다.

올해 전주는 유독 악재가 많았다. 사스(SARS)와 이라크 전쟁은 해외 게스트들의 발길을 막았던 가장 큰 장애물. 이란은 한국과 다른 달력을 쓴다는 걸 몰랐던 이지우는 “왜 이란 사람들은 날마다 휴일일까” 궁금해하면서 밤낮없이 접촉을 시도했지만, 어렵게 초청한 감독들은 아직도 한국에 올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태다.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한 바흐만 고바디는 사스가 두려워서 못 오겠다는 “구구절절한 편지”를 보내왔고, 다른 이란 감독들은 제 시간에 비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어렵게 비행기 티켓을 구해 보냈는데 단 한마디로 방한을 취소하는 감독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이지우는 내년에도 전주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초대해줘서 고맙다며 작은 선물을 건네는 게스트와 외롭게 인천공항을 지키며 손님을 맞는 자원봉사자들이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이다. 개막식 즈음엔 3일 밤을 새운 적도 있는 그는 전날 밤엔 모처럼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런어웨이 피스톨>의 감독 람와춘이 초청팀 스탭들에게 술을 샀기 때문이다. “홍콩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면서 뿌듯해하던 이지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전화기를 들고 황급히 일터로 돌아갔다.글 김현정·사진 이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