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본 슬래셔무비는 이었다. 입장권을 내고 국도극장 로비로 들어갔을 때, 극장 전체가 흔들릴 만큼 커다란 비명소리가 일었다. 마지막 장면이었다. 살인마는 죽고,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안심할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무언가.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 무섭지도 않은, 최후의 발악이 그때는 효과가 있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스크림>의 전화 퀴즈에서도 나오듯이, 에는 제이슨이 나오지 않는다. <나이트메어>의 프레디와 함께, 역대 공포영화 사상 최강의 캐릭터로 꼽히는 제이슨이 등장한 것은 2편부터다. 스키 마스크를 쓰고 커다란 칼을 든 제이슨의 모습은 언제 봐도 인상적이다. 최근에도 <제이슨 대 프레디>가 만들어질 정도로 제이슨의 생명력은 무한하지만, 솔직히 캐릭터 자체가 공포스럽지는 않다. 과거의 원한을 지니고 살육의 길에 뛰어들었다가 점차 초자연적인 존재로 성장하는 제이슨의 모습은 좀 심심하다. ‘난도질’이란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슬래셔무비의 원조인 <할로윈>을 만난 것은, 을 본 한참 뒤였다. 그것도 비디오로. 그런데 이미 만났던 슬래셔무비와는 어딘가 달랐다. 큰 부엌칼로 난도질을 하기는 하는데, 피와 살점이 조금밖에 튀지 않는다. 전혀 끔찍하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78년 작품이니까 벌써 25년이 넘었다. 모든 것이 빨라진 요즘에 비하면, 모든 것이 느리다. 이야기 전개도 느리고, 마이클 마이어스의 걸음도 느리고, 심지어 칼을 휘두르는 속도도 그리 빠르지 않다. 특수효과도 별로 없는 전형적인 저예산영화다. 빠르고 잔인한 요즘 공포영화 관객에게는 재미가 없을 만한, ‘고전’이다.
하지만 <할로윈>은 여전히 섬뜩하다. DVD로 보면 그 이유를 더욱 잘 알 수 있다. 일단 몇 가지 ‘사실’만 들어보자. <할로윈>은 단돈 30만달러로 만들어져서 무려 7500만달러를 벌어들인 경이적인 영화다. 난도질영화의 전형을 창출했고, 마이클 마이어스라는 끔찍한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마이클 마이어스와 싸우는 ‘최후의 여인’ 역으로는 제이미 리 커티스가 출연했고, 그녀는 영원한 ‘스크림 퀸’으로 기억된다. <할로윈> 이후 <뉴욕 탈출> <괴물> <프린스 오브 다크니스> <매드니스> 등을 만든 존 카펜터는 B급영화의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존 카펜터가 창조한 마이클 마이어스는 제이슨이나 프레디와는 약간 다르다. 그는 원초적인 악의 존재다. 제이슨이나 프레디처럼 복수를 하다가 에스컬레이트된 악마가 아니다. 그에게는 세상의 어떤 도덕도, 윤리도, 이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이 없는, 전혀 다른 존재다. 제작다큐멘터리를 보면 마이클 마이어스가 쓸 마스크로 두 가지가 준비되었다고 한다. 하나는 영화에서 쓰고 나오는, 마치 데드 마스크 같은 무표정한 얼굴 모습. 다른 하나는 스티븐 킹의 <잇>에 나오는 것 같은 사악한 피에로의 얼굴. 두개의 마스크 중에서 존 카펜터는 무표정한 마스크를 택했다. 마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걸어다니는 듯한 마이클의 동작은 그 마스크의 무표정과 썩 어울린다.
<할로윈>은 잔인하지 않다. 사람을 죽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대신 존 카펜터는 관객의 심리를 자극할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누군가의 시점으로 움직인다. 창 밖에서 안을 훔쳐보던 그는 부엌으로 들어가 칼을 꺼낸다. 계단을 올라가, 10대의 여성에게 칼을 휘두른다.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가 저지르는 모든 행동을 그와 함께 보고 있다. 우리는 샘 루미스와 마찬가지 신세다. 그는 마이클이 ‘악’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실패한다. 그는 마이클을 잡을 수도, 죽일 수도, 멈출 수도 없다. 그는, 우리는, 무기력하다.
존 카펜터가 작곡한 띵, 띵, 띵 하고 울리는 음악도 공포심을 부추긴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씩 변주되는 주제음악은, 결정적인 순간에도 변함없이 울려퍼진다. 그게 더 무섭다. 제작자는 말한다. 무서운 장면이 나오기 시작하면, 관객은 모두 귀를 막고 있었다고.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와 함께, <할로윈>은 소리가 얼마나 공포를 배가시키는지 알려준 위대한 작품이다. DVD에 서플로 들어 있는 라디오 예고편은, 그 소리의 공포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25년이 흘러도 <할로윈>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것을, 돌비사운드의 DVD는 알려준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Halloween, 1978년감독 존 카펜터 출연 제이미 리 커티스, 도널드 플레즌스 화면포맷 16:9, NTSC 오디오 돌비디지털 5.1 & 2.0 서라운드 자막 한국어, 영어 출시사 리스비젼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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